1994년 4월 6일, 르완다 대통령을 태운 비행기가 미사일 공격을 받고 격추되어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였다. 후투족 중심의 르완다 정부는 그동안 극단적 혐오의 감정이 깊었던 투치족의 소행으로 보고 투치족을 살해하라는 명령을 발동하였으며, 이후 약 100일 동안 군인 및 민간인을 포함하여 르완다 국민의 20%에 해당하는 100여 만명이 집단학살 당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2012년에 이르러 진범이 투치족이 아닌 후투족 과격무장단체의 소행임이 밝혀졌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안은 채 르완다는 아직 후유증에 시달린다.
과거 벨기에는 식민지경영방식으로 당시 소수민족이었던 유목 투치족을 행정요직과 교육혜택을 주어 다수의 농경 후투족을 착취하였던 식민정책으로 후투족의 원성을 샀다. 식민지에서 해방된 후 다수인 후투족이 집권하면서 민족 내전은 있었지만 그래도 평화롭게 지냈으나, 대통령이 암살되면서 결국 이웃을 죽이고 심지어는 부부관계에서도 학살의 참극이 발생하였다. 혐오의 감정을 부추긴 결과는 집단학살이라는 참극을 불러오고 말았다.
혐오감정은 범주화의 과정을 통해 우리와 타인을 구별하며, 상대방에 대한 비인간화과정을 통해 사회악으로 규정하게 되고, 여기에 상대방을 열등하고 무가치한 존재로 각인시키는 이데올로기가 결합하면서 견고한 진영을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불가피하게 폭력을 낳고,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불러오며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마련이다. 그래서 어떠한 형태이든지 폭력은 용납되어서는 안 되며, 궁극적인 해결은 폭력의 대척점에 있는 포용과 환대의 정신을 정착시켜야 하는 것이다.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무엇이 인간을 인간이게 만드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후마니타스, 즉 인간다움이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그는 시저가 살해되는 것을 목격하면서, 폭력에 의한 정치는 결국 인간성을 상실하게 될 것이며,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인간다움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키케로는 인간다움을 갖춘 인간의 덕목으로 "온건함, 수양, 명예, 정의로움, 위엄, 덕, 세련됨, 지혜, 절제, 겸손, 형평성, 측은지심, 선의 베풀기 등"을 제시하였는데, 요약하면 인간에 대한 사랑이 후마니타스 정신의 핵심이다. 사랑은 생명에 대한 경외함을 가져오지만, 폭력은 사망을 낳는다는 점에서 사라져야 한다.
지난 1월 9일 김 모의원이 주선하여 백골단 출범식이 국회소통관에서 열렸다. 눈을 의심하였으나 사실이었다. 백골단을 열린 반공청년단 예하의 조직으로 소개하였는데, 반공청년단은 해방 후 서북청년단이 대표적인 조직인데 정부의 비호를 받아 무자비하리만큼 폭력을 행사한 것으로, 백골단은 경찰의 예하조직으로 1980년대 학생시위를 폭력으로 진압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시대에 폭력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닌가 싶어 두렵다.
그런데 더욱 눈을 의심할 대목은 김 모의원이 과거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정치학 교수였다는 사실이었다.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는 인문적 바탕 위에 학문을 연마하여 균형 잡힌 사고 및 고결한 성품의 인재를 길러내기 위한 교양교육 중심의 교육과정을 추구하여, 이상적인 교육 시스템으로 인정받는 대학이었다. 이러한 대학의 교수였던 의원이 갑자기 백골단 기자회견을 주선하였다니, 전직 교수로서 자괴감이 든다. 지금까지 역사 속에서 근근이 쌓아왔던 우리의 보편적 가치가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 같은 혼돈을 보는 것 같다.
지금처럼 우리사회에서 양 극단의 이념이 지속된다면 서부지방법원 난입과 같은 폭력사태가 더욱 빈번하게 일어날 것이 자명하다. 르완다와 같은 대규모 폭력이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양 극단으로 인해 생기는 보통 국민의 상처는 쉽게 치유될 것 같지 않다. 더 늦기 전에 후마니타스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