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5월 5일은 고추 심는 날이다. 특히 음성과 괴산 지역은 더욱 그렇다. 나의 교직 생활은 괴산의 한 작은 분교에서 시작했다. 그곳에서 만난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을 지닌 시골 아이들의 눈망울은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맑았다. 어린이날을 며칠 앞둔 날 아이들에게 물었다. "여러분, 어린이날 고추 심죠? 그날 우리끼리 숲으로 소풍 갈까 하는데? 부모님께는 내가 허락을 받아볼게요." "정말요? 그럼 진짜 좋죠." 그렇게 아이들과 학교 인근 산으로 첫 소풍을 갔고 풀꽃 관찰, 놀이 등 신명 나게 놀았다.
음성으로 학교를 옮겨서도 나는 행보를 멈추지 않았다. 우리 반 아이들과 소풍을 가는 일이 입소문이 나면서 동참하는 동료, 선·후배 담임선생님들이 10여 개 학급으로까지 늘어났다. 열정 하나로 시작한 일이었기에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쁨이고 보람이었다. "이 프로그램 참 좋은데, 우리끼리만 하기는 아까우니 음성군 지역 전체로 확대하면 어떨까요?" 일정을 마치고 뒤풀이를 하는 자리에서의 느닷없는 내 제안에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거 좋겠는데? 까짓거 크게 한판 벌여봅시다." 사실 이런 제안을 하면서도 결과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던 터라 선생님들의 긍정 반응과 의지가 기쁘면서도 내심 걱정이 되었더랬다.
음성신문명예기자협의회가 주최하고, 전교조충북지부음성지회가 주관하여 『음성 어린이날 한마당 큰잔치』를 연 첫해가 1998년이다. 설레고 기대되었던 그때 그 첫 마음을 여전히 잊을 수가 없다. 음성읍 설성공원 잔디밭에 작은 무대를 설치하고, 놀이마당과 먹거리 마당 등 조촐하지만 알차게 행사를 열었다. 즉석에서 가족 동요잔치 신청을 받아 진행하기도 했는데 그저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마냥 즐겁고 행복했다.
나는 첫 행사를 기획한 후로 지금까지 음성어린이날행사추진위원회 위원장 역할을 맡아 심부름을 하고 있다. 어언 27년째. 해를 거듭해 오면서 행사는 점점 규모가 커져 이제는 참여 인원이 5,000여 명에 이르는 아주 큰 행사가 되었다. 안타깝게도 구제역 파동, 세월호 참사,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행사를 올리지 못한 때도 있었지만, 해마다 행사를 열어 올해 23회째 행사를 무사히 마무리했다.
어떤 이는 "위원장 후계자를 안 만들고 장기 집권 하는 겨? 하하하!"라며 핀잔을 주기도 한다. 불쾌하지 않은 핀잔이다. 세상이 바뀌고, 사람도 바뀌고, 솔직히 에너지가 다소 줄어든 것도 사실이지만 내가 이 일을 끊임없이 하는 이유는 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교단에서 만나는 순박하고 아름다운 아이들의 눈망울을 언제까지라도 잃지 않고 지켜주고 싶기 때문이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아이는 아이다. 아이답게 단 하루라도 맘껏 놀고, 힘껏 뛰며 건강하게 성장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 일을 끊지 못하고 한다. 선생으로서 처음 가졌던 그 마음 그대로 힘들어도 힘들다고 하지 않으며 오늘을 살고 있다. 한결같은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