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학생자치회장으로 뽑아주신다면 우리 학교의 발전과 학생 여러분의 행복한 학교생활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학생들의 권리가 보장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전교생 40여 명 남짓한 작은 학교지만 학생자치회장과 부회장을 뽑는 선거의 열기는 사뭇 진지하다. 지난해 12월 아이들의 선거 유세를 보면서 어린 시절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의 어린 시절은 너무나도 가난했다. 100원 남짓하던 6색 크레용을 살 돈이 없어 미술 시간은 빈손이기 일쑤였고, 부엌의 찬장을 아무리 뒤져도 마땅히 먹을 것이 없어 가마솥에 가득 삶아 놓은 굵은 꽁보리를 고추장에 비벼 먹는 것으로 허기를 달래곤 했다. 먹고 사는 일이 최우선 과제였기에 자식 교육은 신경 쓸 수조차 없었으리라. 부모님의 속마음을 알 수 없었던 나는 어린 시절 꿈이 대통령이었다.
전교생 600여 명의 대표가 되는 전교어린이회장 선거에 당당히 출마했다. 혼자서 밤새 연설문을 썼다. 달빛에 마당에서 연습도 했다. 드디어 의견 발표가 있는 날 세 번째 순서로 운동장 조회대에 올라가 목청껏 외쳤다. '제가 우리 학교의 전교어린이회장이 된다면 무엇보다도 저는 여러분의 발이 되고 손이 되어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최선을 다해 실천하겠습니다. 여러분의 머슴이 되겠습니다. 저를 꼭 회장으로 뽑아주십시오.' 어찌나 떨리고 가슴이 쿵쾅거리던지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 모를 지경이었고, 예닐곱 명의 후보자 연설이 끝나고 드디어 투표 시작. 결과는 낙선이었다. 실망이 컸다. 나는 내가 꼭 당선될 것이라 믿었기에 더더욱 실망스러웠다. 어찌나 실망했던지 차마 부모님께 이야기조차 하지 못했다.
2025년 학생자치회를 이끌어 갈 학생자치회장·부회장, 집행부원들과 간담회를 하였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회장·부회장을 비롯하여 스스로 학생자치회에서 일해 보겠다고 하여 면접 심사를 통해 뽑힌 친구들이다. 제각각 올 한 해 어떻게 활동하고 싶은지 포부를 밝히고, 우리 학교와 학생들을 위해 하고 싶은 일들을 이야기한다. 우리 학교와 학생들에게 부족한 점은 무엇이고 필요한 점은 무엇인지 또박또박 말한다.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당당히 밝히는 친구들을 보며 만약 내가 그때 전교어린이회장이 되었더라면 '나도 이렇게 교장 선생님 앞에서 당당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대통령이 파면되고, 사회적으로 무척 혼란스러운 시기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사회가 조속히 안정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울러 우리 아이들에게 진정한 민주주의의 가치와 실천에 대한 교육이 절실함을 생각한다. 우리 학생자치회 임원과 집행부원들이 자치회 활동을 통해 인권과 기본권 보장을 배우고, 참여와 책임을 통해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활동을 해나가길 기대한다. 실천을 통해 진정한 민주주의의 가치에 대하여 새기기를 바란다. 민주주의를 바르게 세우는 길은 결코 말이 아닌 실천으로만 이룩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