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뉴스를 뒤적거리다가 눈에 띄는 기사를 하나 발견했다. '"아이 다칠 각오 하고 유치원 보낸다." 이상한 부모들 아닙니다.'라는 제목의 기사인데, 덴마크의 교육 현장을 돌아보고 쓴 글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덴마크에는 다양한 대안학교들이 있다. 덴마크 청소년의 25~30%는 160여 년이 넘는 역사가 있는 자유 학교 또는 에프터스콜레·프리스콜레와 같은 교육기관에서 자신의 진로와 삶을 진지하게 성찰하는 시기를 보낸다.
아이의 몸에 조금이라도 상처가 났다고 해서 유치원에 전화를 거는 일이 없다는 덴마크의 숲유치원 이야기 속에는 '아이들은 다치면서 큰다.'라는 철학이 녹아있다. 곳곳에 수십 대의 CCTV가 설치되어 있는 우리 학교와는 달리 CCTV가 없는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는 부모들은 교사들을 신뢰하며, 교사들도 부모들이 믿고 아이를 보낼 수 있도록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 또한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가 숱하게 넘어지면서 균형감각을 익히고 걷는 법을 터득할 때까지 기다려 주는 여유와 인내를 교육에 그대로 적용한다. 아이는 숱하게 넘어지면서 무릎이 까지고 손바닥에 상처가 날 수도 있을 터. 그러나 이런 아이들을 지켜보며 아이가 스스로 일어설 때까지 최소한의 개입과 인내심으로 섬세한 부분에서도 아이들의 잠재력을 믿어주는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제 우리 학교 현장으로 눈을 돌려본다. 학교생활 중 긴장되고 신경 쓰이는 일 가운데 하나가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다치는 일이다. 물론 가벼운 상처라면 간단하게 약을 발라주는 조치로 끝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아이의 아주 작은 상처도 부모에게 알려야 하는 것이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상처가 왜 났는지, 조치는 어떻게 했는지 상세하게 알려준다. 그래야만 한다. 씁쓸하다. '굳이 그렇게까지?'라는 의문이 들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교육에 서비스의 개념을 도입한 데서 기인한다고 본다. 교육을 공급과 소비의 관계로, 학생과 학부모를 수혜자로 인식하게 되면서 시시콜콜한 것까지도 학부모에게 알리는 것이 좋은 서비스라 여기게 된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학부모들은 아이에게 아주 작은 일만 생겨도 CCTV 열람 정보공개를 요청한다거나 민원을 제기하는 일을 마치 권리라고 여기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최근 크고 작은 사건과 사고들을 겪으면서 안전의식이 매우 높아졌다. 물론 일상의 생활 습관으로 정착되도록 지속적인 실천이 수반되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의 안전 생활 의식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게 된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안전을 강조하는 만큼 위험하다고 판단하는 활동은 꺼리는 풍속도가 생겨난 것도 사실이다. 안전을 구실로 체험학습과 같은 활동을 되도록 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접할 때는 속상하다.
사람은 누구나 경험을 통해서 배운다. 특히 길을 잃고 헤매본 아이라야 새로운 길을 찾는 법을 배운다. 도전과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라야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 힘이 생겨난다. 우리 학교 현장이 교사와 부모의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약간의 상처가 있더라도 실수를 통해 삶을 배우는 배움터이며 삶터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