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지난 1년을 달려왔다. 아이들의 행복한 성장을 위하여 최선을 다해 교육활동을 이끌어왔다. 첫발을 힘차게 내디뎠기에 그 힘으로 1년이라는 긴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소진된 에너지를 재충전하고 이제 다시 새로운 1년을 시작한다.
교육은 흡사 농사일을 닮았다. 농부의 사랑과 정성을 바탕으로 작물의 특질과 생장에 맞는 적절한 방법을 찾아 꾸준히 정진해야 비로소 풍성한 수확을 얻을 수 있다. 씨앗을 심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온갖 정성을 다하는 손길은 농부의 기본 조건이다. 말이 없는 식물들의 상태를 세심하게 살피고 챙겨서 적절한 조치를 함으로써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교육도 그렇다.
최근 일어난 "교사에 의한 초등생 살인" 사건은 너무도 마음이 아리고 아프다. 밝고 희망차게 새 학기를 출발해야 하는데 찢어진 가슴이 아물지 않는다. 어린 나이에 먼저 하늘로 간 아이에게 미안하고 죄스럽다. 지켜주지 못해 너무도 미안하다. 아이를 그렇게 만든 사람이 다름 아닌 교사라는 점에 가슴이 찢어지게 아프다. 가장 안전해야 할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게 더더욱 믿기지 않는다. 사건을 보도하는 여러 언론은 우울증이 범행 동기라는 기사를 쏟아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정부와 교육계에서는 질환이 의심되는 교사들을 찾아 적기에 조치할 수 있는 법안을 마련하고, 정책을 만들고, CCTV 설치 등 물리적 안전 조치를 강화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데도 아픔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법이 마련되지 않아서였을까? 아니다. 분명 법적, 행정적 안전장치들은 기존에도 있었다. 여러 원인이 있겠으나 이러한 장치들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우리 사회구조와 분위기, 교육계 문화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새 학기를 맞아 안전하고 평화로운 학교를 만들기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짜내야 할 때다. 법적 제도와 물리적 안전장치를 구축한다고 해서 예기치 못한 사고와 문제를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치밀한 분석과 원인 규명이 이루어져야 하고 무엇보다도 구성원의 신뢰와 이해, 집단지성이 필요하리라. 교사로서 소명 의식과 사명감, 투철한 교육철학과 가치관은 분명 필수조건이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이러한 조건을 갖추는 일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렸더랬다. 그러나 교사로서의 사명감과 소명 의식을 교사 개인에게 무한 책임지게 하던 시대는 지났다고 판단한다. 그리하여 모두가 함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지지와 지원을 통한 상호존중과 신뢰의 문화 형성이 필요한 때다.
교사도 한 사람의 자연인이다. 도덕적 윤리관과 사명감을 지닌 교사로서의 자질이 중요하듯 자연인으로서의 개인의 삶도 존중되어야 한다. 자연인으로서의 행복한 삶과 교사로서의 삶의 행복을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까닭이다. 따라서 교사의 건강한 삶을 위한 적절한 대책과 지속적인 관리는 물론이거니와 법과 제도의 정비, 정신건강 관리 체계의 강화, 사회적 인식 개선, 신뢰와 이해의 문화 조성 등이 촘촘하게 종합적으로 구축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