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학교 교육의 비전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아이들을 하늘처럼 섬기는 학교>를 비전으로 설정해 보자는 제안을 했던 적이 있다. 학교의 주인은 당연히 아이들이며, 학교는 아이들의 행복한 성장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에 아이들이 중심이 되는 교육을 하자는 의미였다. 수십 년을 교육 현장에서 선생으로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의심을 해 본 적이 없는 말이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저항에 부딪혔다. '아이들이 하늘이면 교사는 땅이냐?', '아이들을 섬긴다면 학교가 무슨 종교 단체냐·'라는 저항이었다. 순간 어안이 벙벙해지는 충격을 받았고 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아픈 기억이다.
서로 상반되는 두 생각 사이의 긴장을 건설적이고 생산적으로 이용하여 두 생각의 요소를 모두 포함하면서도 각각의 생각보다 뛰어난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 창의적으로 긴장을 해소하는 능력을 통합적 사고능력이라 한다. 예를 들어 토끼, 당근, 개를 앞에 두고 관련성이 있다고 생각되는 두 개를 짝지어 보라고 할 때 토끼와 당근을 짝지었다면 이는 가능한 모든 관계를 고려하여 잘 어울리는 관계를 찾으려 한 생각이기에 통합적 사고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앞서 제시한 <아이들을 하늘처럼 섬기는 학교>라는 말을 왜곡되게 해석하여 하늘과 땅으로 구분 짓고, 종교적으로 해석한 것은 분절적이며 이분법적 사고라 아니할 수 없다. 이 말에 내포되어 있는 학교 교육의 내용과 목표, 가치들을 포괄적인 관점으로 보면 하늘처럼 섬김을 받는 아이들의 행복은 당연히 교사의 행복이며 학부모의 행복, 즉 교육주체가 함께 행복한 교육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곧 통합적 사고이며 통합적 가치관이 아닐까?
작년 대선에서 우리 사회는 '갈라치기'라는 광풍을 맞아 매우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선거란 것이 당선과 낙선의 양자택일 과정이긴 하지만 이러한 갈라치기라는 패러다임이 내 편이라 생각하면 친구이고, 내 편이 아니다 여기면 모두 적으로 간주하는 정서를 심어주지 않았나 싶어 심히 우려스럽다. 그런데 이러한 이분법적 가치관은 꼭 선거 시기가 아니라도 우리 일상 삶의 많은 영역에 존재하고 있다. 내 편이 아니면 모두 적으로 간주하고 내치는 상황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현실이 생각하면 할수록 참으로 속상하고 안타깝다. 혹여 적이라 하더라도 능력과 성품을 중시하여 중용하는 슬기로움을 발휘한 시대는 흥했고, 편을 가르고 눈앞에 보이는 이익만을 중시한 채 끼리끼리 어울렸던 시대는 망했다는 것을 우리는 지나온 역사를 통해서 보지 않았는가?
어떤 문제나 현상을 마주함에 있어 통합적 사고관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이분법적인 사고관으로 보았을 때 과정과 내용을 중시하는 절차는 사라지고 오로지 결과만을 중시하는 태도로 점철된다. 그래서 지금 당장 원하는 결과를 얻었다 할지라도 역사와 시간은 결코 그 결과를 옳게 평가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 아니면 모두 나쁜 것이라는 분절적이며 흑백만이 존재하는 이분법적인 가치관은 일을 수행하는 과정을 외면한 채 결과만을 쫓게 된다. 그리하여 사상누각과 같은 결과를 앞에 두고 그저 '보기에 좋았더라'라고 할밖에. 또한 분절적이며 이분법적 사고는 남 탓과 떠넘기기도 유발한다. 내 편이 아니라는 이유로 관계를 외면하고 남 탓만 하는 태도는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도 결코 옳은 태도가 아니다. 단지 자기방어 기제의 일부일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분명 후회하게 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누구나 잘못된 선택과 실수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한 번으로 족하다. 똑같은 잘못과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실수가 아니라 고착화된 관념이다. 그러니 사회와 교육, 인간의 행복한 성장을 위해서 더 늦기 전에 이분법적 사고관을 버리고 통합적 사고관으로 바로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