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느 시골에서 추수가 끝난 후 마을 사람들이 모두 들판에 모여 꽹과리·날라리·소고·북·장구·징 따위의 풍물(風物)들을 요란스럽게 울려 대며 신명나는 놀이를 벌이고 있었다.
다만 할머니 한 사람만 이 놀이에 참석하지 못하고 자신의 집마루에 앉아 그들이 흥겹게 노는 광경을 구경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 할머니는 노쇠한 데다가 다리마저 다쳐 걸을 수가 없었으므로 이렇게 멀찍이서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할머니의 눈에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거센 회오리바람이 나사 모양으로 빙빙 돌아치며 마을 사람들이 한창 놀고 있는 곳을 향해 치닫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모두 놀이에 열중한 탓으로 그 거센 회오리바람이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계속해서 풍물놀이를 즐길 뿐이었다.
할머니는 직감적으로 그 거센 회오리바람이 마을 사람들이 놀고 있는 곳을 덮치면 그들이 위험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소리를 지르며 피신하도록 애썼다.
그러나 요란한 풍물 소리 속에서 할머니의 소리가 마을 사람들의 귀에 들릴 리 없었다. 이에 다급해진 할머니는 주위를 살펴보다가 급히 방으로 기어들어가 방안에 펼쳐져 있던 솜이불과 종이, 천 등을 모아 놓고 그 위에 성냥을 그어 불을 붙였다. 그리고는 성냥 통마저 그 위에 집어던졌다.
그러자 삽시간에 방 안 전체에 불길이 번지더니 마침내는 할머니가 있던 초가집 전체가 불길에 타오르는 것이었다. 초가집에 불길이 치솟는 것을 본 마을 사람들은 놀이를 멈추고 급히 불이 난 곳으로 달려갔다.
그들이 막 초가집 근처에 다다랐을 무렵, 거센 회오리바람이 그들이 놀던 곳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러면서 그곳에 있던 물건들이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것이 보였다.
마을 사람들은 처음에 초가집에 난 불이 할머니의 실수로 인한 것인 줄로 알았다. 그러나 그 거센 회오리바람이 자신들이 놀던 곳을 덮치는 것을 보면서, 또 할머니가 솜이불을 꽉 껴안고 타 죽은 모습을 보고는 그것이 할머니의 살신성인(殺身成仁)이었음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의 이익과 물질을 위해서라면 타인의 생명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진 세상 탓일까. 타인의 생명을 위해 자신의 소중한 생명을 기꺼이 바친, 이 할머니의 의(義)와 행동하는 용기가 더욱 값지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봄이 시작되면서 동시다발적으로 전국에서 산불이 일고 있다. 예초기 불통이 튀거나, 소각 등 건조한 날씨와 강풍으로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산청에서는 산불진화대원으로 투입되었던 공무원 4명이 바람의 방향이 바뀜으로 고립되었다가 목숨을 잃었다.
작년 2024년에는 경북 문경시 공장 화재 진압 중 28살, 36살 김수광 소방교와 박수훈 소방사가 꽃다운 나이에 끝내 순직하였다. 생전 재난 현장에서 위기에 처한 국민을 구하겠다는 사명감으로 살신성인한 것이다. 이들의 숭고한 사랑과 용기가 이 각박한 세상 속 더욱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