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고등학교 친구가 평생 간다'는 소리를 들었다. 아직 이해관계가 개입되지 않은 순수한 시절의 친구들이 오래 남는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고등학교 교사로서 요즘 학생들의 친구관계가 정말 평생 갈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얼마 전, 한 고등학교 수업 컨설팅을 하러 갔다. 요즘은 웬만한 고등학교 2~3학년 수업은 이동수업을 한다. 자신이 선택한 과목에 맞춰서 해당 수업을 들으러 다닌다. 평소 수업할 땐 몰랐던 사실을 컨설팅에서 발견하였다. 쉬는 시간이 매우 조용하다는 사실이었다.
혹자는 쉬는 시간이 조용한 것을 긍정적으로 볼지 모르겠다. 그러나 '낙엽만 굴러가도 웃는 나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의 청소년기 학생들이 조용하다는 것은 꼭 바람직하지는 않다. 무언가 부정적 신호일 수 있다. 쉬는 시간에 조용한 학생들이 수업 시간이라고 달라질 리 없다. 50분의 수업 시간 내내 교실 곳곳에 띄엄띄엄 앉은 학생들은 고요했고, 수업 종이 끝나자 부리나케 교실을 빠져나가 다른 교실로 향했다. 수업 전후 1시간 가량 서로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끝난 것이다.
지난해 12월 29일 한국교육개발원이 전국의 초·중·고 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2023년 교육정책 인식조사>에 따르면, 약 4명 중 1명이 '친구를 깊게 사귀기 힘들다'고 응답하였다. 고등학생은 26.7%로 가장 높았다. 성적이 낮을수록 이러한 인식은 더 심했다. 하위권 학생 약 3명 중 1명이 학교에서 친구를 사귀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이 원인으로 학생들의 갈등 해결 능력 부족을 꼽을 수 있다. 친구 간에는 갈등이 생기게 마련이고 갈등은 항상 부정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관계가 더 깊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 학교폭력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다 보니 학생들은 사소한 갈등도 모두 폭력으로 여기며 이를 피하게 되었다.
실제 인식조사에서 학생의 절반 가량이 '갈등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고, 해결책으로 18.7%가 그 친구를 멀리하는 방법을 택했다. '사이가 나빠질 것 같아서 그냥 참는다'는 응답은 12%였는데 고등학생은 그 비율이 20%에 달했다. 갈등을 경험하지 않은 학생들 중 11.2%도 '갈등이 생길 것 같은 친구를 멀리해서' 갈등을 피할 수 있었다고 답했다. 대화로 해결하기보다는 회피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뜻이다. 이러다 보면 서로 거리를 두게 마련이다. 이런 친구가 평생 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다면 고등학생들에게 주변 학생은 어떤 존재일까? 전체 고등학생의 22.2%는 '우리 학교 친구들이 경쟁자로 보인다'라고 응답하였다. 2022년 27.8%에 달했던 것에 비해서는 낮아졌지만 상당히 높다. 또 58.1%의 고등학생은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이용하려 한다'는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냈다.
사회 곳곳에서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이 문제라는 얘기가 들린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고립이 존재한다. 한참 친구를 만들고 정서적으로 자라야 할 학창 시절이지만, 우리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