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참 많은 일을 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많은 것을 요구받는다. 교육만 보더라도 학교 밖에서는 무슨 사건이 벌어지면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며 교육과정을 만들어낸다. 성폭력 예방교육, 학교폭력 예방교육, 약물 오남용 예방교육 등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예방교육을 꼽자면 열 손가락이 모자라다.
때론 이런 요구들은 모순적이다. 전세 사기 같은 사회적 사건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학교에서 이런 실용적인 것을 가르쳐야 한다면서 국영수만 가르친다고 비판한다. 반면에 이공계 교수들은 교육과정에서 수학이 너무 쉬워져서 AI 시대를 따라잡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한편에서는 요즘 학생들이 어휘력이 떨어졌다고 국어교육을 강화할 것은 물론, 한문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긴 10여 년 전에는 3.1절을 못 읽는다고 논란이 돼서 수능에서 한국사를 필수로 만들기도 했다.
지표로 보면 이러한 요구의 모순은 더욱 드러난다. 2024년 한국교육개발원에서 나온 '교육여론조사'를 보면, 초중고 전반에 걸쳐 "학교가 잘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 해야 할 과제"로 학업 성취도 제고가 16.7%로 3위를 기록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학업 성취도 제고의 경우, 초중고 전반에 걸쳐서는 높은 순위를 기록했지만 정작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단위로 놓고 보면 3.5, 4.8, 6.0%로 10위권의 순위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학교 하면 떠오르는 일 중에서는 '학업성취도 제고'가 상위권이지만, 막상 학교급별로 따졌을 때는 학업성취도 제고가 후순위로 밀린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2위를 기록한 '다양하고 특색있는 교육과정 운영' 역시 학교급별로 보면 초등학교가 18.2%로 가장 높고, 중학교 9.4%, 고등학교 8.4%로 점점 낮아진다. 그런데 정작 초등학교나 중학교가 아니라 고등학교가 다양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겠다며 고교학점제를 하고 있으니 서로 엇갈린 길을 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학교 선택 시 고려 사항"에 관한 질문에서도 고등학교에서 '교육프로그램의 특성'을 꼽은 비율은 10.3%로 낮은 편인데도 말이다.
그러면 고등학교 교사들에게 학부모가 요구하는 것은 학습지도 및 제언 역량일까· 그렇지도 않다. 고등학생 학부모들의 49.7%는 교사들에게 '진로 진학 지도 제언 역량'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했다. 학습지도 및 제언 역량은 중학생 학부모들은 29.4%가 선택했지만, 고등학생은 16.5%에 그쳤다. 공부에 대한 요구가 가장 높은 학교급이 중학교인 것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고등학생쯤 되면 공부보다는 지금까지의 성적을 바탕으로 진로 진학과 관련된 조언을 학교에 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학교에 대한 요구는 단일하거나 평평하지 않다. 그러니 지역에 따라, 학교에 따라 다른 요구되는 목소리들도 다를 것이다. 우리 지역 시민들, 학부모, 학생들은 무엇을 원할까· 그 목소리는 일관될까· 혹시 특정 목소리가 과대표되는 것은 아닐까· 객관적으로 목소리를 듣고 해석하는 일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