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주홍빛 능소화가 울타리를 따라 피어 있는 집에서 어르신의 삶을 반추해 보며 보낸 시간이 잊히지 않는다.
일흔 중반 이상의 여성 어르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써 드린다고 하면 모두가 좋아하시며 참여하실 줄 알았다. 처음 동네 경로당을 방문해서 말씀드리니 손사래를 치며 거절하신다. 할 얘기가없다는 말씀에 덧붙여 자식과 남편의 눈치를 보신다. 옆에서 설득하고, 집으로 찾아가서 말씀드려도 요지부동이다.
그 시절 여성의 삶이 녹록지 않았다는 사실과 아직도 남성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생활이 안타까웠다. 그렇게 대상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다가 한글 선생님의 도움으로 어르신을 소개받았다.
마당에는 주인의 손길로 잘 가꾸어진 텃밭이 있고, 야생화가 곳곳에 피어 있다. 한눈에 봬도 불편해 보이시는데 한 걸음씩 내디디며 나를 맞으러 돌계단을 내려오신다. 시골에서 한평생 살아오신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문밖에서 반갑게 맞아 주시니 감사함이 밀려온다.
거실 탁자 위에는 공책 한 권과 연필이 놓여 있다.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복습하고 계셨나 보다. 친정어머니보다 연세가 많으신 여든두 살이시다. 갑자기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시는 친정어머니가떠올라 먹먹해진다. 허리도 아프시고 걷는 것도 불편하시지만 온전한 정신으로 다니시는 어르신이 부럽다. 버스를 타고 읍내로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한글을 배우러 가신다고 말씀하실 때 표정이 환하게 밝아진다.
'배움이 한이 됐다'라고 거듭 말하는 어르신을 보면서, 그 시절 여자가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며 살아온 차별이 강하게 다가왔다. 이번에 회고록을 쓰면서 남성 중심의 전통적인 시대를 살아오신 여성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고정화된 성 역할의 벽에 갇혀 있음을 절감했다.
어려웠던 시절, '여자는 이래야 해'라는 사회적 분위기로 배우지 못하고, 집에서 동생들 돌보고 부모 말 잘 따르는 게 최고로 여겼다. 시집가서는 남편을 '하늘'이라 여기며 자식 잘 낳아 키우고, 집에서 살림만 하는 게 미덕으로 알았다. 사회에서 이미 여자와 남자가 해야 할 일을 정해놓은 고정화된 성 의식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어주고도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어르신들의 생각을 바꾸는 게 쉽지 않았다. 외부의 벽도 높지만, 내부의 벽도 단단하고 높다. 그 안에서 삭인 상처가 얼마나 깊을까?
인생은 끝없는 배움의 길을 걷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팔십 넘어 한글을 배우고 계시는 어르신은 자신의 벽을 무너뜨렸다. 여자와 남자로 편 가르기가 아니라 모두가 '사람'이라는 전제하에 차별과 부당함의 벽은 없어야 한다.
능소화꽃이 활짝 피어 있는 그 집, 어르신의 글 읽는 소리가 올여름에도 담장밖을 훌쩍 뛰어넘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