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눈

2022.11.17 15:56:10

한기연

음성문인협회장

국화꽃향이 마음을 흔든다. 둥그렇게 만들어 놓은 국화꽃 터널을 걸으면서 다채로운 꽃 색깔과 하늘이 빚어내는 가을 축제로 빠져든다. 시월 말에 떠난 예총 축제견학은 오랜만에 일상을 벗어난 시간이다.

가까운 곳으로 떠난 시간은 여유로웠다. 함께 간 이들이 자유롭게 걷고, 천천히 음미하며 누렸다. 일정에 쫓기지 않아도 됐고, 나도 혼자 주변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발밑에 구르는 은행잎에도 눈길이 갔다. 거리두기 해제 후 축제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예외 없이 이곳에도 많은 사람이 찾았다. 잔디밭에서는 작은 무대가 펼쳐지고 노랫소리가 마음을 흔들었다. 위쪽에 있는 의자에 홀로 앉아 눈을 감는다. 느린 속도로 지나가는 삶의 궤적을 훑는다.

문학 스승이신 B 선생님은 눈을 반짝이며 주변을 살피느라 여념이 없다. 매표소 앞에 세워진 표지판을 찍고, 느린 걸음을 옮기는 중에도 예리한 시선이 빛난다. 존경스럽다. 나이가 들어도 사라지지 않는 작가적 호기심과 영감으로 써 내려간 작품은 읽는 이의 감성을 흔든다.

글은 스스로를 다독이고 치유하는 힘이 있다고 했던가? 수많은 응모자의 글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번 반기문 전국백일장은 공모전으로 진행했는데 우려와는 달리 많은 이가 응모했다. 공모전을 홍보하면서 아는 선생님들께 학생부 글쓰기를 부탁했다. 흔쾌히 홍보하겠노라고 하셨지만, 단체접수는 어렵다고 하셨다. 예전과 달리 글쓰기를 강요할 수도 없고, 학생들의 자발적인 의견이 더욱 중요했다. 더군다나 요즘 아이들은 쓰기 자체를 많이 하지 않는다. 수업도 강의보다는 영상매체에 더 익숙해져 있다. 그래도 다행히 초·중·고 학생부에도 응모자가 많았다.

대상 시상금이 높은 일반부 수필은 경쟁률이 11대 1일 정도로 치열했다. 접수는 잘 되었는지 걱정하던 글쓴이의 마음을 헤아리고 고민의 흔적을 읽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다문화 부에도 생각 외로 길게 쓰면서 잘 쓴 글이 여러 편 있었다. 부문별로 응모된 글은 결과를 가늠하기까지 일주일도 넘는 시간이 걸렸다. 수많은 응모자는 자신이 본 세상을 한 줄 문장에 담았다. 그 문장을 읽으면서 나는 행간에 담긴 감정에 움직였다. 어느 고등부의 시에서는 마지막 한 줄에서 눈물이 나왔다. 단 몇 줄이라도 허투루 볼 수 없는 글이다.

다른 사람의 글을 읽으면서 부끄러웠다. 나의 민낯이 글을 쓸수록 고스란히 드러난다. 습작 없이 경계선에 머무르는 미약함을 알면서도 쓰지 않으면 더 쓸 수 없다는 합리화로 타협한다. 땅 위에 서 있는 나무는 보면서 정작 그 아래 깊게 뻗어 내려간 뿌리를 보지 못한다. 사물을 자세히 보는 눈과 문학적 호기심이 부족한 탓이다. 작가적 안목을 키워야 함을 느끼는 부분이다.

'이정림의 수필특강'에 보면 유능한 세공사는 보잘것없는 원석 덩어리를 보석으로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다. 원석에 지나지 않는 이야기를 보석으로 만들려면 그 내면의 이야기를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 어느 소재를 보더라도 글감을 찾아내고 의미를 연결할 수 있는 예리함이 필요하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원석인데, 보석으로 만들 재주가 없다. 수십 년 글을 써도 초보이다. 수필을 쓰려면 늘 생각하고 들여다보기를 잘해야 하는데 미흡하다.

이제부터 생활 속에서 모든 익숙했던 것들을 처음 본 것처럼 낯설게 바라보려고 한다. 그냥 지나쳐 버리기 쉬운 글감을 찾는 일의 시작이다. 나도 그들처럼 보석을 발견하고 싶다. B 선생님은 보물찾기하듯 여기저기 기웃거리신다.

저마다 다른 색깔의 국화꽃이 푸른 하늘과 어우러진다. 그 향기 속에 무엇을 숨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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