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식
충북문인협회 회장·충북사진대전 초대작가
이제 나이가 들어가나 보다. 마음은 늘 청춘이라 여기며 살아왔는데 어쩔 수 없이 죽음이라는 단어를 밀쳐낼 수가 없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만물의 영장이요 세상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다고 자신하면서도 유독 죽음이라는 현실의 문에 부닥쳤을 때는 초라하기 이를데 없다. 그런 이유 때문에 권력과 부를 모두 가진 사람들도 자신의 현재 위치를 영생토록 이어가고 싶은 심정에서 불로영생(不老靈生)을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으려고 발버둥쳤는지도 모른다.
어느 죽음이든 슬프지 않은 것은 없다. 환갑을 지나면서 작은 것 하나에도 자꾸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이 생겨나고, 마음속에 언제나 계속될 것이라는 막연했던 바람들이 서리를 맞은 초목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시들고 있다.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조금 더 살았으면 하는 속내를 버릴 수 없는 것이 삶이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공유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성임은 자명하다. 끝이 보이지 않지만 언젠가는 그 끝에 다다를 수밖에 없음도 안다. 배우지 않아도 생로병사(生老病死)는 인간이 짊어지고 가야 할 운명이고, 조금이라도 병에 걸리지 않고 고통없이 편하게 생을 마치고 싶은 것은 욕심이라기보다는 간절한 희망이다.
4개월 전에는 석사와 박사과정 지도교수님이신 존경하는 이동과 교수님을 보내드렸고, 3개월 전에는 어머니가 하늘의 별로 돌아가셨는데, 어제 대학시절 나에게 어머니처럼 늘 다정다감하게 돌봐주시던 오선주 교수님이 소천하셨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가장 귀하게 맺었던 인연의 끈 3개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세분을 보내드리면서 그분들이 나에게 베풀어 주셨던 은혜를 다 갚지 못한 회한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인생이라는 100년도 안 되는 1주기 짧은 삶 속에서 무엇이 중요한가를 미처 깨닫지 못한 사이에 흘러가 버린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했던 것인지를 이제 사 아쉬운 눈으로 바라본다. 철이 들고 있음인지 노망이 발동하고 있는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분명한 것은 살아가는 동안 지금 바라보고 있는 찰나의 순간들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소중했던 것임을 배우고 있다.
학창 시절 최루탄에 잘려 나간 내 손가락을 보고 가슴 아파하시며 병원으로 보내주었고, 대학원 시절 헌법으로 전공을 결정했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 한여름 폭우를 30분 넘게 맞으시며 아쉬움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셨으며 "쇼윈도우에 걸린 넥타이를 보니 강박사에게 잘 어울리시겠다"시며 손편지까지 적어서 보내주셨던 자애로웠던 오선주 교수님이 영면에 드셨다. 내 짧은 삶에 있어서 큰 변곡점에 항상 서 계셨던 분이고, 퇴직 후에도 스승과 제자로 안부를 묻고 연락하며 언제나 긍정적인 방향으로 격려해 주셨던 참스승님을 잃게 되었다는 슬픔은 글로 적기도 민망하다. 이제 안면암에서 영면에 드실 교수님의 영생에 편안함만이 영원하시길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