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으로 전해지는 마음

2023.01.31 17:23:09

이명순

수필가·한국어강사

끝나지 않는 코로나 여파로 아직도 비대면으로 학생들을 만난다. 이번 학기에는 한국어를 공부할 4단계 학생들과 만났다. 4단계는 중급과정이기에 학생들이 한국어를 꽤 잘하는 편에 속한다. 올해 1학기 수업할 때 분위기도 좋았고 학생들도 열심히 공부해서 흡족했었다. 마지막 평가 결과도 그리 나쁘지 않아 나름 만족해했다.

1학기에 수업 분위기가 좋았기 때문에 2학기에는 어떤 학생들을 만나게 될까 더 궁금했다. 2학기는 학습 기간이 짧아서 일주일에 두 번씩 더 많은 시간을 집중적으로 공부해야 하는데 학생들의 출석률과 학습 태도가 어떨지 몰라 수업을 시작할 때는 막연한 걱정도 앞선다. 온라인 학습에 많은 학생이 신청했는데 대부분 3단계 과정을 거치지 않은 말 그대로 한국어 신입생들이 많아서 앞으로 100시간을 어떻게 이끌어 가야 할지 생각이 많아졌었다.

예상대로 학생들은 처음부터 어휘가 어렵다고 했고 수업 진도는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이 지나며 익숙해졌고 학생들과 정이 들었다. 끝날 때 즈음해서는 가까운 친구처럼 즐겁게 대화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에서의 체류 기간이 3~4년 정도 된 학생들이라 한국어를 제법 많이 이해했는데 일하느라 한국 문화는 많이 접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한국에 사는 동안 시간이 있을 때마다 여행할 것을 권하는 편이다. 직장 생활이 바빠 여행이 쉽지는 않겠지만 시간을 내어 여행한다면 나중에 고향에 돌아갔을 때 좋은 추억도 될 것이고 현재 한국 생활 적응에도 도움이 된다. 여행은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고 접하는데 아주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한국어 능력 향상을 위해 단톡방에서는 자국어를 사용하지 말고 한국어만 사용할 것도 부탁했다. 8개 나라 학생들이 모여 있으니 인원이 많은 나라는 친구들끼리 대화가 많겠지만 소수 인원의 나라 학생들은 소외될 수가 있다. 이런 경우 단톡방이 활발해지기 어렵다. 필요한 공지만 전달하고 대답하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학생들의 대화가 꽤 활발하게 이뤄졌다. 쉬는 시간이면 다른 나라 친구들과 한국어로 대화도 하며 교류하려고 애쓰는 학생들이 기특했다.

수업 기간에 학생들이 음성군관광두레 사업의 일환으로 하루 동안 음성군을 관광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우리 반에서는 네팔 3명, 중국 1명, 미얀마 1명, 파키스탄 1명의 학생이 참석했다. 학생들은 비대면 만남에서 처음 대면으로 만남이다. 어색할 수도 있겠기에 혼자 가는 나라의 친구를 챙기라고 당부했더니 학생들이 같이 모여서 기념사진도 찍고 게임을 하며 노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서 단톡방에 올렸다. 별것 아닌 일에 내 가슴이 뭉클했다. 부모 마음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스스로 알아서들 할 나이지만 국적이 다른 학생들이 서로 챙기고 같이 대화하며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나도 같이 갔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고 말하며, 타일에 그린 그림을 보여주며 환하게 웃는 학생들이 얼마나 기특했는지 모른다. 성인이지만 놀이공원에 간 아이들처럼 천진난만해 보였다. 자신들이 사는 지역이지만 이렇게 온종일 구석구석 다니며 관광도 하고 다른 나라 친구들과 어울려 마음껏 소통할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보람과 뿌듯함을 새삼 느낀다. 비대면 만남은 꼭 필요한 말만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대면으로 만났을 때 대화하며 상대의 눈빛을 통해 느끼는 섬세한 교감을 느낄 수 없는 탓이다. 컴퓨터 전원이 꺼지면 검은 화면 속으로 모든 것이 닫혀 버린다. 인간관계도 그렇게 끝날 수 있지만 즐겁게 대화하며 함께 했던 추억만큼은 오래도록 내 가슴에 온기로 남아서 전해질 것이다. 어느새 친숙해진 학생들이 모습이 벌써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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