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은 나의 운명 - 붓쟁이 유필무

2014.02.06 18:45:28

ⓒ홍대기
빛바랜 기와를 이고 흙담을 두른 그의 공방은 조용했다.

다양한 붓들이 창호지를 넘어 온 빛을 받으며 가지런하게 걸려 있었다.

자신을 붓쟁이라 칭하며 35년을 전통 붓과 함께 한 장인 유필무를 만났다.

붓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듣고 작업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단순히 붓을 매는 사람이 아니라, 깊고 올곧은 정신으로 전통을 잇는 그를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홍대기
"붓은 종이에 상처를 내지 않는다. 다만, 종이에 스밀 뿐이다."라는 국립경주박물관 이영훈 관장의 말은 붓의 특성을 잘 나타낸다. 붓은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우리민족을 닮았다. 옛날 선비들은 문방사우인 종이, 붓, 벼루, 먹을 가까이 했다. 먹의 향기를 맡으며 글을 쓰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알았다. 글을 쓰고 난을 치는 선비에게 붓은 조용히 곁을 지키며 외로움을 달래주는 벗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붓은 선비정신을 대변하는 기록의 수단이며 정신 표상의 도구였다.

ⓒ홍대기

붓은 동물의 털로 만든 모필과 식물에서 얻은 재료로 만든 초필로 나뉜다. 일반적인 모필은 양호필로, 흰 염소의 털로 만들며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황모필은 족제비 꼬리, 장액필은 노루 앞가슴 털, 낭모필은 이리 털, 마필은 말의 털로 만든다. 초필의 재료인 고필은 볏짚, 갈필은 칡 줄기, 죽필은 대를 잘게 쪼갠 것이다. 붓에 대한 열정으로 유필무장인은 기본적인 모필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서민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작품을 만들고자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렇게 찾은 볏짚(고필), 칡(갈필), 억새, 개나리새, 종려나무 등의 다양한 재료로 붓을 만들고 있다.

ⓒ홍대기
그는 "모필의 가치는 얼마나 철저히 버렸느냐에 있고, 초필의 가치는 얼마나 두들겼느냐에 있다."고 한다. 초필을 만들기 위해서는 미지근한 물에 9번 찌고 그늘에 아홉 번 말리고 15,000번을 넘게 두들겨야 한다. 갈필의 경우 열 개에서 하나 건지기도 힘들 정도다. 붓 한 자루를 만드는데 기본 2-3개월의 작업기간이 필요하다. 전통 붓은 원모 선별부터 풀 먹이고 빼기 등 크게 12가지가 대표과정이지만 세부적으로는 30여 과정을 거쳐야 하며, 최소 200~250회의 손길이 간다. 그는 여기에 수고를 더해 필관에 전통문양이나 좋은 시, 글귀를 각을 하고 한국적 색채를 넣는다. 또한 비단실을 감아 전통의 멋을 현대적으로 새롭게 표현한다. 필관 어디에도 그의 손길이 가지 않은 곳이 없다. 이는 붓쟁이 유필무가 고단하고 기나긴 시간 붓과 함께 호흡하며 만들어낸 숨결로, 붓을 사용하는 사람들과 귀한 쓰임의 가치를 함께 하고자 함일 것이다.

그가 만든 붓은 한국인의 섬세한 심성과 유연함, 강한 의지를 담고 있다. 이러한 한국인의 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우리 붓이 서구의 필기구와 값싼 중국제품들에 밀려 사라져 가는 것이 안타깝다. 전통 붓의 가치를 이어가는 순수함만으로 견디기엔 그가 짊어 진 생활고의 무게가 생의 업보처럼 무거웠나보다. "10년 전에도 이 일을 했고, 5년 전에도 이 일을 했습니다. 3년 전에도 이 일을 했지만 내일도 이 일을 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그의 눈빛이 아프다. 그것은 그의 말이 이 일을 절대 그만두고 싶지 않다는 의지의 다른 표현임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글·사진=홍대기(사진작가)·이옥주(여행작가)


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

<저작권자 충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충북일보 / 등록번호 : 충북 아00291 / 등록일 : 2023년 3월 20일 발행인 : (주)충북일보 연경환 / 편집인 : 함우석 / 발행일 : 2003년2월 21일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무심서로 715 전화 : 043-277-2114 팩스 : 043-277-0307
ⓒ충북일보(www.inews365.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by inews365.com,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