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뜨락 - 그녀의 옷장

2013.12.22 14:43:18

옷장 앞에서 한참을 주춤거린다. 막상 차려입으려니 마음에 드는 옷이 없다. 여러 옷을 꺼내 몸에 대보지만 한눈에 쏙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옷이 없는 건 아니다. 해마다 한 벌 두 벌 사들인 옷이 몇 벌인가. 언제 어디서든 '단아하다'는 말을 듣고 싶은 심정에 옷 타령이다.

나의 옷 타령은 여성의 대부분이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싶다. '옷을 사도 사도 입을 옷이 없다'는 말 또한 대단히 공감하리라. 새 옷을 갖은 만족도 순간일 뿐 매양 그 옷이 그 옷 같지 않던가. 전문가는 되풀이되는 이 과정에 대하여 어떤 지적을 하고 싶겠지만, 나는 정중히 사양하리라. 그저 복장에 관한 나의 작은 욕심은 남들 앞에서 패션 감각이 뒤떨어진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은 것뿐이다.

오늘도 출근하고자 화장을 마치고 외출복으로 갈아입는다. 특별한 날이 있는 경우엔 전날 미리 입고 갈 옷을 머릿속에 그려둔다. 평소에는 그날 날씨를 고려하여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아마도 이 부분에서 실패하는 요인이 나올 수도 있으리라. 밖에 입고 나갈 의복을 미리 고민하고 준비한다면, 아마도 더 나은 옷차림으로 나설 수도 있는데 알면서 습관이 들질 않는다.

나의 옷장 분위기는 어두운 편에 속한다. 밝은 옷은 대부분 이너웨어와 셔츠 몇 벌 정도다. 직장 생활하며 터득한 옷차림은 검은색과 짙은 회색에 흰색을 곁들인 정장, 아니면 베이지 톤으로 차려입는 것이 무난하다. 어두운 톤 정장을 입을 땐 이너웨어를 밝은 톤으로 차려입으면 깊이 고민할 필요 없이 간단하게 해결된다. 어찌 보면 나의 옷차림은 고민 없이 차려입은 개성 없는 옷차림이다.

가끔 초청 세미나나 기관행사에 나갈 자리가 생긴다. 그 자리에 가보면 여성은 거의 보이지 않고, 홍일점일 때가 더러 있다. 남성들의 패션도 대부분 어두운 분위기이다. 이런 자리에 여성미가 흐르는 꽃무늬 원피스나 색감이 화려한 정장의 옷차림은 어울리지 않는다. 홍일점인데다 화려한 정장을 더하면 그야말로 초점 대상이 되리라.

패션이 비즈니스 경쟁력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설문 조사가 있다. 직장인 87%가 '그렇다'고 답변을 하였단다. 그리고 벤저민 프랭클린은 "먹는 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먹되 입는 것은 남을 위해 입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 보면 남들 앞에서 개성을 마음껏 표현하는 것도 좋지만, 남을 의식해야 하는 것이 옷차림인가 보다.

어느 자리에서건 옷을 차려입은 모양새가 중요하다. 옷차림은 사람들의 단지 외면을 꾸미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어찌 보면 그 사람의 내면을 다른 이에게 전하는 통로가 아닐까 싶다.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자 타인이 나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리 생각하니 문득 상대가 나를 떠올릴 때 어떤 느낌이었을까 궁금해진다. 간혹 나의 첫인상이 '도도해 보인다.'는 표현은 나의 패션과도 무관하지 않으리라.

이은희 약력

2004년『월간문학』등단, 2004년 동서커피문학상 대상 수상
2007년 제물포수필문학상 수상, 2010년 충북수필문학상 수상. 2012년 신곡문학상 본상 수상
2013년 제8회 충북여성문학상 수상, 2013년 국립청주박물관 사진공모전 금상 수상 외 다수.
저서로,『검댕이』,『망새』,『버선코』,『생각이 돌다』수필집 출간.
한국문인협회, 계간『에세이포레』편집위원, 청주문인협회 회원, 충북수필문학회 주간, 충북여성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주)대원 상무이사로 재직 중.

얼마 전 대학생 딸의 옷장을 정리해 주었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딸의 얼굴을 볼 수가 없다. 숙사에서 가져온 트렁크와 옷상자가 며칠 채 그대로다. 정리정돈에 예민한 난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어 상자를 풀어 옷장 정리에 들어간다. 옷을 정리하며 옷가지 수에 놀라고, 다양한 색감에 더욱 놀란다. 나와는 취향이 많이 다르다. 세대 차이라고 말하기엔 괜스레 서글픈 생각이 밀려든다.

나와 딸의 옷장을 비교해본다. 나의 옷장엔 주로 단색 바지 정장과 긴 코트 위주의 고급 제품이다. 그러나 딸애는 정장보단 편안하고 단순한 스타일 위주에 카디건과 티, 블라우스와 팬츠, 원피스 등 옷가지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 그녀의 옷장엔 코디를 원활히 할 수 있는 옷들로 채워져 있다. 딸의 옷장을 정리하며 코디에 관한 사고의 틀에 갇힌 나를 발견한다.

딸은 패션에 관심이 많다. 한동안 패션 잡지를 구독하는 걸 보고 내가 나무란 적이 있다. 혹여 지금 하고 있는 공부를 뒤로하고 패션 공부를 한다고 할까 봐서다. 아무튼, 딸은 친구들에게 자신이 입은 옷차림을 유행을 시킬 정도이다. 그렇다고 그 애가 지닌 옷들이 값비싼 옷들이 아니다. 대부분 중저가 상표다. 평소 패션에 관한 공부를 게으르지 않은 덕인가 보다. 이제야 딸의 남다른 코디 감각을 인정한다.

옷장 앞에서 옷 타령만 할 것이 아니다. 틀에 박힌 나의 패션 감각을 바꿔야 하리라. 우선 옷장 분위기부터 바꿔야 한다. 그러려면 따스한 이미지를 주는 밝은 계통의 옷이 필요하다. 이참에 딸이 입고 있는 하늘거리는 꽃무늬 원피스와 스키니 청바지도 사리라. 지금 난 누가 딸인지 엄마인지 모를 정도의 패션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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