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놀다간 정인을 그리며

2013.04.28 17:47:39

박영수

수필가·딩아돌하문예원 이사장

수암(水岩) 우영(禹濚) 전 청주문화원장이 타계한지 어언 1주기, 인생 한 수 가르쳐 준 정인을 그리는 이들이 마음을 모아 책을 한 권 만들었다. 인연 깊은 40인의 일화 중심 회고담을 엮은 <문화와 놀다간 당신이 그립습니다.>인데, 4월의 마지막 날 출판회를 겸한 추모의 밤이 열린다.

"뭐? 문집? 시끄러!"

생전에 이름 내밀기를 싫어하던 고인이기에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불호령을 내릴 듯도 하지만, 그러나 우리들은 겸허, 포용의 수암정신을 되새겨 본 삼고자 추모문집을 펴내는 우를 범했다.

"아름다운 형의 마음속에 들어가 우리도 그런 아름다운 마음으로 살고 싶습니다!" 한다면 피식 웃고 넘겨줄까. 기꺼이 산파역을 맡았던 사람으로 추모의 제단에 문집을 바치는 감회가 촉촉하다.

수암 형의 장례 때 호상(護喪)을 보았던 나는 술 한 잔 내는 분들이 줄을 잇는 뜻밖의 반짝 호사(?)를 누렸다. 수고했다는 뜻 보다는 창졸간에 떠나보낸 임의 생각이 간절하여 호상 본 사람을 대타로 삼은 때문이었다.

이런 과정 속에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해보자'는 뜻이 이심전심으로 통하다가, 류귀현 청주문화원장과 김동완 감사가 지난 6월 49재날 마련한 '추모 오찬'이 불을 붙이는 역할을 했다.

'1주기에 맞춰 추모문집을 내보자'는 제안에 참석했던 고인과 가까운 분들이 적극 동참하고 나섰다. 곧바로 간행위원회가 탄생되면서 즉석에서 발간비까지 마련되었다.

당초 조촐한 규모로 계획했으나 일을 하다 보니 커지고 말았다. 글을 보내 온 분들이 많은데다, 절친한 친구를 잃은 슬픔에 식욕을 잃고 불면에 시달렸다는 오익균 전 흥덕 부구청장이 소식을 듣고 감격하여 거금을 보내 온 것이다. 여기에 고향 후배 황규호 전 서울신문 문화부장이 3개월간의 취재를 통해 재조명한 중편역작 '수암 약전'이 서두를 장식하면서 책의 체계가 서고 발간 규모도 크게 늘어났다.

이 책에 실린 회상기들은 단순한 회상기만은 아니다. 향토사의 귀중한 증언이 담겨져 있다. 특히 오세탁, 송주헌, 임찬순 님 등의 글에는 50년대 척박한 땅에 문학의 신새벽을 열던 시절의 숨겨진 이야기가 고스란하고, 이상훈, 김운기 님 등의 글엔 지역 언론사의 뒤안길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어 사료(史料)의 가치도 엿보인다. 40인의 글이 하나같이 주옥편들이다.

책머리에 유성종 선생이 갈파한 대로 수암은 "그늘에서 열심히 충북의 문화를 잇고, 일구고, 후진을 기르고, 아우르고 미래로 이어놓은 열정의 봉사자"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책의 간행 취지가 결코 '지역문화예술 발전의 공로자 우영'을 부각시키는데 있지 않기에, 제목에 '문화와 놀다 간'이란 표현을 넣었다. 어쩌면 이 '놀다간'이란 행간에 수암의 삶이 함축적, 상징적으로 담겨져 있을 듯도 하다.

나는 대학시절부터 오늘까지 직장생활, 작가활동을 통해 여러 형태의 많은 책을 펴내왔으나, 이런 추모문집은 첫 경험이었다. 전국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일일 터이다. 허지만 어려울듯하던 일이 생각보다 수월했고, 나의 창작집을 낼 때보다 훨씬 경이로웠다. 떠나보내고 나서 더 그리운 고인의 덕향(德香)이 만인의 가슴에 가득한 때문일까. 이런 분 곁에서 삶을 누려왔음이 새삼 감사하고, 앞으로 흉내라도 내며 살고 싶다.

아름답게 살다 아름답게 떠나간 사람을 기릴 줄 아는 우리도 아름다운 사람일까.

이 책을 통해 그리운 정인을 다시 만나는 기쁨을 누리는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나는 무엇을 남기고 갈 수 있을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에 대한 묵시적인 해답을 발견하는 그런 의미 있는 책이 되어 주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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