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에서 쓴 '임병무 수필'을 읽고

2013.02.03 16:12:31

박영수

수필가·딩아돌하문예원 이사장

흰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그 눈처럼 머리가 하이얀 원로시인 한 분이 새해 선물인 양 책을 보내오셨다. '내륙문학' 제49집이었다.

반갑고 감사한 마음으로 책을 펼쳐 나가다가 뒷부분에 이르러, 내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2년 전, 갑작스런 발병으로 모든 활동을 접은 후, 지금도 병원에서 투병생활 중인 임병무 전 청주문화의집 관장의 수필이 실려 있지 않은가.

불과 달포 전 문병 갔을 때, 거동은 물론 대화조차 나누기 불편하여 마음을 아프게 하던 중증환자가 어떻게 이런 주옥같은 작품을 쓸 수 있었을까. 전에 써 놓았던 것인가. 그렇지 않았다. '60세에 찾은 5cm의 키'란 제목 밑에 '키 작은 뇌졸중환자의 투병기' 란 부제가 달려 있었다.

작품에 담긴 이야기는 이랬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작은 키에 대한 열등감으로 마음의 상처가 컸던 작가는, 50대에 이르러 척추가 주저앉는 디스크 현상까지 겪으면서 5cm가 더 쪼그라드는 바람에, 작은 키에 대한 콤플렉스가 더욱 심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서울 근교에서 1년 남짓 첨단 재활치료기기로 과학적 치료를 받는 과정에 기적이 일어났다고 했다. 목과 허리에서 모두 5cm의 키를 벌어들여, 거울을 봐도 자신의 커진 키가 대견스럽기만 하다는 얘기다.

작가는 결미(結尾)부분에 바른 자세와 맨손체조의 기적 같은 체험담을 의미화 한 뒤 희망의 노랫말을 적었다.

"어렵게 벌어들인 키를 지키느냐 못 지키느냐는 지금부터다. 다시는 '쬐끔한 놈'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 피나는 인고를 거쳐 되찾은 내 키를 어떻게든 지켜낼 것이다. 뇌졸중은 가고, 키는 오고, 아마도 성탄 선물이 아닐까."

임 작가의 밝고도 순수한 영혼이 일상에 찌든 내 마음까지 헹구어 주는 듯 했다. 뜻밖에 찾아든 불청객으로 일상을 등지고 살면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강한 의지를 밝히고 있다. 필력회복의 신호탄 같다.

'역사의 서술에 수필이란 장르를 도입하여 저널리즘이란 옷을 입혔다'고 어느 칼럼집 책머리에 밝혔던 임 관장의 '역사와 수필과 저널리즘의 앙상블'은 그동안 펴 낸 9권의 책으로 만족할 수는 없는 일일 터, 구겨진 역사의 주름살을 펴는 그의 문인 논객 활동을 다시 보고 싶다.

지난 77년 언론계에 투신, 사라져 가는 '장날'의 애환을 엮은 연재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문화부 임 기자'는 쾌도난마처럼 필봉을 휘둘러, 도심에서 신음하던 용두사지 철당간을 정화시키고, 훼손된 흥덕사 터를 고발하여 사적지정에 불을 당겼다. 어디 그 뿐이랴. 지역의 시급한 문화 현안을 올바로 진단하고, 탁견을 제시하는 명칼럼을 하루가 멀다고 써 내던 문화대기자가 아니던가. 그 열정, 그 혜안을 기억하는 이 어찌 문화예술계 사람들 만이랴.

이튿날, 가경동 c병원을 찾아 가는 길에 송계 박 영대 화백이 동행했다. 재활운동을 나갔던 임 관장이 간병인 부축을 받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몸은 야위었으나 얼핏 키가 전보다 커 보였다.

"뭘 먹고 이렇게 큰 거여."

"운동 먹었어요, 운동."

선(禪)문답이 따로 없었다. 유머 감각은 여전했다. 송계가 '좋은 글 계속 써야지' 하자, 알았다는 듯 오른 손을 휘저어 보이며, 자신 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보리 화가 송계는 쾌유를 빌며, 청맥 소품 한 점을 문화원을 통해 전달했다. 격려와 관심이 필요한 때다.

우리 지역의 보배로운 문화자산인 그가 병상을 훌훌 털고 일어나, 다시 힘차게 붓을 달릴 수 있기를 기원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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