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대런 아세모글루와 사이먼 존슨의 '권력과 진보'라는 책을 보면 조지 스티븐슨이라는 엔지니어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흔히 산업혁명은 제임스 와트가 끓는 물의 주전자 뚜껑을 보고 만든 증기기관이 시발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산업혁명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작은 일부이고, 수많은 엔지니어 들과 투자자들이 더 많은 경제적 생산물을 만들어내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조지 스티븐슨입니다.
그는 1781년 영국의 작은 마을에서 가난하고, 문맹인 부모 슬하에서 태어났습니다. 학교교육은 생각할 수도 없었고, 18세가 되어서야 겨우 읽고 쓰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탄광에서 허드렛일부터 시작하여 점차 기계를 다루기에 이르렀습니다. 1811년 탄광에 차오른 물을 퍼내는 문제를 해결하면서 탄광의 모든 기계를 관장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그는 나무나 철로 만든 레일을 이용하는 방식을 발전시켜 말이나 기관차로 운반하는 시스템을 구상하게 되었고, 이것이 철도운송으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1821년 스톡턴~달링턴 철도건설법이 통과되어 스티븐슨도 철도건설 안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으면서 에드워드 퍼스라는 투자자 지원을 받아 항구도시 리버풀과 면직공업도시 맨체스터를 잇는 철도건설 안을 의회에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철도부지 소유자들과 운하 소유자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쳤습니다.
가방끈이 전혀 없는 스티븐슨과 지주들이 고용한 명문대를 나온 고학력 변호사들과의 싸움은 기획에서부터 차이가 나서 스티븐슨은 제대로 항변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성으로는 비관해도 의지로 극복한다.'는 정신으로 실용적인 내용을 가지고 대응을 하였고, 이것이 당시 시대상황에 맞아 1826년 의회 승인을 받게 되었습니다. 스티븐슨은 공식교육을 받지는 않았어도 엔지니어로서 설계와 건설을 책임지면서 각 분야 전문가들을 고용하여 미래산업이라 할 수 있는 철도를 건설한 것입니다.
그는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을 이용한 증기기관차로 시속 10㎞의 속도로 50㎞를 운행하는데 성공하였고, 결국 1830년 역사적인 개통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그는 기관차를 운행하는 기관사와 불조절 노동자는 숙련공으로, 선로와 기관차를 보수관리하는 현장노동자와 표 판매관리 등은 실용적인 인력으로 구축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건설된 리버풀~맨체스터 철도운행은 삽시간에 확대되어 영국 전역에 3천㎞에 이르는 철도망이 건설되어, 물건뿐만 아니라 사람의 이동까지 혁신적으로 가능하게 하였고, 당시 생활필수품인 석탄과 우유가격을 대폭 하락시키는 소위 물품과 서비스가 바뀌는 물류혁명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스티븐슨은 정규교육은 받지 않았더라도 현장에서 직접 기계를 관장한 경험을 가진 엔지니어로서 산업혁명의 실질적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철도 건설을 성공하였기에, 그를 BBC는 위대한 영국인으로 선정하여 진정한 산업혁명의 주역으로 존중받을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산업화 이전에는 이러한 신분상승은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스티븐슨과 같은 사람들이 실용적인 기술(테크놀로지)을 내놓아도 받아들이는 체제가 아니었습니다.
스티븐슨이 철도 안을 내놓았을 때 극렬하게 반대한 계층이 바로 강이나 운하로 운반하여 이득을 취하던 기득권인 대지주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자기들에게 오는 이득을 버리고, 혁신적인 철도건설을 찬성할 리 없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대부분의 가난한 나라가 겪었고, 겪고 있는 현실입니다.
우리도 스티븐슨의 사례에서 보듯 무작정 고학력을 고집하는 구시대적 악습에 매어있는지를 되돌아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