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전령들이 긴 겨울을 빠져나와 하나둘 순서를 기다린다. 드디어 개화의 시작이다. 우리 집 주변에 있는 산에는 생강나무가 첫 포문을 열었고, 뒤이어 진달래가 드문드문 핑크빛을 발하며 산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그리고 철쭉이 따라 붙겠지.
나의 조그마한 정원에도 봄소식을 전하고 있다. 복수초의 노랑이와 할미꽃이 마치 흑장미처럼 진한 색감으로 다가와 반갑다고 정말 반갑다고 인사를 한다. 할미꽃은 손주가
"할무니 사랑해요"
이렇게 손주로부터 늘상 들어서인지 그 이름 자체로 더 정겹다. 오늘은 누가 반갑다고 인사를 하려는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들을 살피는 매일이 행복한 나날이다. 그런데 잡초가 먼저 선점하려고 얼굴을 빼꼼하게 디밀고 있다. 이 잡초가 크게 자라기 전에 솎아내야 한다. 내가 사랑하는 식물이 양분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손놀림이 바쁜 계절이다. 그래서 잡초는 참 얄밉다. 이길 수 없는 적(敵)이라 지치기도 하지만 이것도 자연의 일부이기에 덤덤하게 받아들이려 애쓴다.
영산홍(映山紅) 꽃봉오리가 터졌다. 5월이 되어 장미도 피어날 것이다. 나는 장미 중에서 붉은 색을 가지고 태어나는 장미를 훨씬 좋아한다. 애정, 행복한 사랑으로 꽃말도 예쁘다. 개화기는 5월에 만개하기 시작하여 9월까지 피고 지기를 반복하여 오래도록 우리 곁에서 웃음 꽃을 선물한다. 꽃이 주는 화사함은 우리의 정신 건강에 좋은 도파민 이 활성화가 되어 신심(身心)을 튼실하게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그 사랑스러움에 사람들은 꽃을 보면 저절로 행복한 미소가 넘쳐난다.
나는 요즈음 장미과 장미속에 속하는 덩굴(장미, 찔레꽃, 찔레장미)나무를 손질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모두 붉은 계열이다. 장미는 매년 세월의 모진 풍파를 견디며 기둥 역할을 했던 튼튼한 가지가 일부 수명을 다해 도태된다. 주변에 생기를 불어넣었던 오래된 가지였으나 꽃이 피기 전 묵은 가지를 정리 해주어야 할 때다. 그러므로 마른 가지를 쳐내고, 단정하게 보이도록 늘어진 가지를 묶기도 한다. 그래야 꽃이 곱게 물들고 자신의 존재에 자신감을 뿜어내며 빛을 발할 것이다. 이러한 나의 마음을 살필줄 모르고 다소 귀찮게 여기는지 이놈들에게 이리 찔리고 저리 찔리며 내 작은 손에 생채기를 낸다. 그때마다 나는 비명소리 요란하게 지른다.
"아얏! 아야야~"
정원에 아치 형태로 꾸민 덩굴성 장미가 세 곳에 흩어져 있다. 제법 높아서 가지치기를 하려면 낮은 사다리가 필요하다. 또 옹벽으로 된 담장에는 찔레꽃이 있다. 이 위로 올라가 아슬아슬하게 곡예를 하고 있었다. 그때 인기척을 느꼈다. 남편이다.
"지금 뭐하는거야. 주머니에 손은 넣고, 위험하게."
나는 까르륵 웃으며 바지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얼른 뺐다. 내 딴에는 중심을 잘 잡고 전지에 임하지만 남편이 볼 때는 위험천만한 모습으로 비췄을 것이다.
그리고 돌탑을 쌓은 곳에 활대를 이용해 만든 지구볼 형상으로 만든 곳에 찔레장미 가 있다. 이렇게 장미에 반해서 십여군데 산재해 있는 장미 손질로 나의 손은 여기저기 상처로 얼룩져 있다. 역시 자연의 이치는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만고의 진리를 보여준다. 노력한 만큼 자연은 보답한다. 그 공(功)이 마치 나에게 있는 듯 우쭐거리며 사는 삶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