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어라

2025.04.13 14:50:42

김산옥

괴산문인협회 회원

짙은 어둠이다. 맑은 밤바람을 즐기는 나는 밖의 조명등을 모두 켜고 산책길에 나섰다. 그때 바닥에 무엇인가 눈에 들어온다. 바삭하게 마른 나뭇가지인가· 발로 툭 건드렸다. 꿈틀거린다. 아하~ 도롱뇽이 봄소식을 알려주네. 계속 발로 툭툭 쳤다. 기운이 없어 보인다. 하긴 동면에서 깨어났으니 어리벙벙할 만도 하다. 가만히 녀석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나의 장난스러움에 당황한 도롱뇽은 정신을 차리고 씩씩하게 석축 밑으로 갔다.

마을 2차선 도로에는 가로등이 줄지어 서 있다. 좁은 도로에도 드문드문 가로등이 설치되어 있다. 외길인 우리 집까지 오려면 세 채의 집을 지나야 한다. 진입로에 가로등을 설치하려 했으나 밭(田) 주인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식물이 수면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오랜 지론이다. 성장을 방해하므로. 세 번째의 집을 지나고 좁은 다리를 지나면 교차로 역할을 하는 곳이 있다. 산에 오르는 길에는 가로등이 예전부터 우뚝 서 있었다. 우리 집 위로도 가로등이 있다. 그러나 춘분(春分)이 지나 본격적인 농번기가 시작되면 이 모든 가로등은 무용지물이 된다. 봄소식으로 생강나무가 꽃을 피우고 산수유, 진달래가 만개할테니 무척이나 반갑지만 가로등 불빛이 사라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2차선 도로까지도.

태양은 매일 본연의 임무인 햇살을 비춰주고 해지기 전 멋진 노을을 선사한다. 그 빈 하늘을 달님이 기나긴 밤을 지켜준다. 보름달이 휘영청 밝을 때는 괜찮으나 초승달로 쪼그라들면 그 역할은 미미하다. 저녁이 오면 살아 숨쉬는 동식물은 수면을 취하며 낮에 쏟아부었던 에너지를 보충하는 시간을 갖는다. 내일을 위한 숙면이다. 그러나 사람이 거주하는 곳이다. 이러할 때 큰 도움을 주는 게 가로등 불빛이다. 우리 집은 외따로 있어서 이장에게 부탁하여 가로등을 추가로 설치했다. 집 주변을 환하게 비춰주어 저녁 산책을 즐기는 나로서는 가로등의 친절함에 늘 감사하게 여긴다. 허나 도시와는 달리 야경이 턱없이 부족함에도 가로등이 꺼질 때도 있다.

이웃 원주민 아저씨가 다녀가셨다. 평생을 농군으로 사신 분이라 田이 제법 많다. 나이듦에 논농사는 진작에 작파했다. 남편의 얼굴에 불쾌함이 감돈다. 아저씨가 가로등 사용을 중지하라고 요구하셨단다. 배추가 잠을 자야 하는데 환한 불빛으로 낮과 밤을 구분을 못해 쉬지를 못한다나. 괴산은 절임배추로 유명한 지역이다. 고추와 옥수수로 1년 수입원으로 매우 중요한 작물이다. 어찌되었던 남편은 그 말에 수긍하지 않은 채 모르쇠로 일관 하였다. 답답한 아저씨가 직접 전원을 내렸다. 다행이라면 여름은 해(日)가 길다. 마당에 커다란 조명등이 두개가 서 있어 그나마 불편함은 덜하다. 그래도 있는 걸 활용 못하니 속상은 하다. 이러한 일은 우리 집 만 국한되는 일이 아니다. 원주민과 귀촌인들이 가로등으로 인해서 마찰이 일어나 시끄럽다. 그러나 귀촌인은 조용히 살려고 내려온 분이 대부분이라 이런 불협화음을 원치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바대로 행하게 내버려둔다. 그러므로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어둡다. 전기가 들어오기 전의 조선시대의 회귀다.

추분(秋分)이 지나면 밤이 길어진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 그러므로 마침점이자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영원한 순환이다. 곧 수확의 계절이 오고 있음을 암시한다. 한 해의 능사를 끝마치고 곡식과 과일 등을 거두는 풍요의 계절이다. 대지(大地)는 주어진 역할을 끝냈기에 휴면 기간으로 접어든다. 하지만 가로등이 제 역할을 할 때가 왔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저씨는 급한 생리적인 현상을 해결하고 뒷처리를 하지 않는 꼴로 전원을 올리지 않는다. 그동안 참고 인내하던 남편의 몫으로 매년 반복되는 일이다. 그래도 겨울 밤은 길기에 그나마 위안으로 여긴다. 식물이 활동을 정지한 상태여서 초록의 세상은 끝났고, 갈색의 세상으로 쓸쓸하고 적막함에 휩싸인다. 이럴 때 선물처럼 눈이라도 내리면 자연이 주는 설경에 흠뻑 취한다. 뒷처리(제설 작업)는 나중 문제고.

농업을 중시하던 시절에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이라는 말이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가뭄이 심할 때는 임금(王)이 직접 나서 기우제를 올리기도 했으며 늘 풍년을 기원하였다. 현재는 산업화로 접어들면서 농업을 천직으로 여겼던 사람들이 하나둘 대처로 떠났고, 고령자만 남아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곳에 점차 귀촌인이 찾아들며 고사 하려는 지역을 활성화 시키고 있다. 허나 자연의 이치는 순천자존 역천자망(順天子尊 逆天子亡) 이다. 하늘의 뜻(天理)에 순종해야 생존하며 번영을 하고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者는 망하니 순리를 따르고 도리를 지키라고 맹자는 <명심보감> 천명(天命) 편에서 말했다. 자연은 낮과 밤의 역할이 뚜렷하다. 해(日)가 있을 때는 만물의 움직임이 활발하고 해가 지면 만물은 활동을 멈추고 쉬어야 한다. 그러므로 농지의 진정한 주인은 농사를 업(業)으로 하는 농부이다.

봄이 왔다. 기나긴 겨울에 열일했던 가로등이 강제로 휴식기에 접어들어 섭섭하지만 그것이 자연의 섭리이리라.


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

<저작권자 충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충북일보 / 등록번호 : 충북 아00291 / 등록일 : 2023년 3월 20일 발행인 : (주)충북일보 연경환 / 편집인 : 함우석 / 발행일 : 2003년2월 21일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무심서로 715 전화 : 043-277-2114 팩스 : 043-277-0307
ⓒ충북일보(www.inews365.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by inews365.com,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