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른다

2024.04.29 16:31:19

김은정

세명대 교양대학 부교수

싱글맘과 사는 네 남매가 있다. 막내는 이제 겨우 예닐곱 살, 의젓하게 장남 역할을 해내는 큰 아이가 열서너 살쯤 되었다. 아이들은 모두 아버지가 다르다. 아버지들과 헤어지면서 아이들을 돌보는 건 엄마 몫으로 남았다. 가난하지만 복작복작하고 즐겁게, 네 아이들과 엄마는 나름의 행복을 누리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가 새로운 사랑을 만났다. 엄마에게는 이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그 어느 것보다도 중요했나보다. 어린 아이들에게 약간의 돈을 쥐어주고 "곧 돌아올게"라는 약속과 함께 떠난 엄마는 몇 달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게 아이들은 버려졌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아무도 모른다>(2005)는 1988년 일본에서 일어난 아동방임 사건을 소재로 만들어졌다. 영화는 성장기에 양육자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한 아이들이 결국 맞이할 수밖에 없는 불행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현대사회에서 아동은 당연히 보호받고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로 정의된다. 특히 성장기에 있는 아동이 제대로 발달할 환경과 조건을 제공하지 않을 경우 이 역시 아동학대로 간주한다. 아동복지법 제3조 제7호에서는 '보호자를 포함한 성인이 아동의 건강 또는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신체적, 정신적, 성적 폭력이나 가혹행위를 하는 것과 아동의 보호자가 아동을 유기하거나 방임하는 것'을 모두 아동학대의 범주에 포함시킨다.

한국 사회에서 아동학대를 포함한 가정폭력은 실제 사건 발생에 비해 신고율이 낮은 범죄에 속한다. 가정폭력 피해자들에게는 그래도 가족 간 다툼인데 경찰에 신고하는 것은 너무하다는 인식 때문에 폭력이나 학대로 고통 받으면서도 스스로 신고해서 구제받는 선택에 소극적이었다. 이웃 입장에서도 주변에서 가정폭력이 일어나고 있음을 짐작하거나 알더라도 '남의 집안 일'에 간섭하는 것이라는 인식으로 인해 타인의 고통에 안타까워하면서도 섣불리 신고하지 못했다. 가정폭력을 마주한 경찰들도 비슷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가정폭력을 신고한 주부 중 46%가 경찰의 소극적 대응을 경험하였다고 조사됐다. 폭력조차도 '집안 일'이라고 생각하는 데서 비롯된 폐해다.

2000년대 이후 한국사회는 가족의 형태와 기능 측면에서 급격한 변화가 이루어졌고, 그에 따라 관계 측면에서의 변화 역시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과거 전통적 대가족 형태에서는 많은 일들이 '집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집안에서 해결되지 못하는 일들은 바깥으로 나와서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근래 아동학대 사건들 중 이웃 주민이 신고하여 세상에 알려진 사건들이 증가하는 현상은 고무적으로 볼 수 있다.

영화 <아무도 모른다>와 같은 상황에서도 이웃이 조금 더 깊은 관심을 가졌더라면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아이들의 머리카락이 손질 받지 못해 속절없이 자라나고 있는 것을 누군가 유심히 쳐다봐주었더라면, 동생들의 끼니를 해결해주고 싶은 큰 아이가 매일 편의점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는 것에 관심 가져주었더라면, 그리고 이 아이들을 제대로 돌봐줄 수 있는 기관에 데려다줄 수 있었다면 아이들의 미래가 조금은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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