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봉(童奉)선생과 살구

2025.06.23 14:54:40

이철호

소월문학관 이사장

신록이 우거진 계절, 울안에 탐스런 노란색 살구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모습이란 일가견이 아닐 수 없다.

살구나무는 대개 울안에서 자라고 있기 때문에 한 가정의 가사(家史)와 더불어 애환의 추억들이 얽혀 있기 마련이다. 누구나 망향의 그리움 속에서 옛 고향집을 생각할 때에는 맨 먼저 살구나무가 떠오르고 향수의 훈향을 뿌리게 마련이다. 이 살구나무는 식용보다는 생약재로 이용도가 더 높아 우리 건강생활과 밀접한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편으로는 세전지물(世傳之物)의 의의도 지니고 있어서 어느 모로 생각하면 다른 나무보다도 더 애틋한 정이 깃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살구 씨를 한방의학에서는 행인(杏仁)이라고 이름 지어 부르고 있다.

그런데 살구 씨라는 뜻은, 미친개에 물려서 광견병에 걸렸을 때 살구 씨가 유일의 약이 되거나, 개고기를 먹고서 체했을 때도 살구 씨가 특별한 효과가 있다고 해서 살구(殺狗)를 하기 때문에 살구라는 이름이 연유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진(晋)나라 때에 「동봉(童奉)」이라고 하는 명의(名醫)가 있었다. 환자의 질병을 잘 다스리고 약재를 개발하는 데 뛰어난 명의일 뿐만 아니라 빈민을 구제하고 만인에게 인술로 봉사하는 덕인으로서 추앙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아온 분이었다. 동봉선생은 환자를 돌봐주면 치료비를 받는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전혀 무료 치료가 아니라 환자를 돌봐주고 나서 환자들로 하여금 각자 자기 집 둘레에 살구나무를 심도록 하였다. 중한 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는 다섯 그루의 살구나무를 심도록 했고 경한 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는 한 그루의 살구나무를 심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을 치료받은 환자들의 약값으로 따졌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심겨진 살구나무는 수년 동안에 10만여 그루를 헤아리게 되어 어느덧 울창한 행림을 이루게 되었다. 의학계를 행림(杏林)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때부터 동봉선생의 살구나무에 얽힌 이야기로 비롯된 고사라 하겠는데 이 이야기는 진나라 때의 갈홍(葛洪)이라는 문필가가 저술한 『신전전』에 기록하여 전하고 있는 것이다.

동봉선생의 행림에서는 해마다 살구가 태산같이 쌓였는데 이 살구는 쌀과 바꾸어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빈민을 구제하였다. 그래서 이 근방에 사는 사람들은 타지방에서와 같은 부황이 나서 죽었거나 굶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동봉선생의 시혜(施惠)를 입은 사람은 해마다 수천 명씩 불어났으며 이 지역의 우상과도 같이 받들어졌다.

인류의 역사는 가치관을 창조하며 전해 내려왔다. 그것이 연구라든가 개발을 통해서 새로운 발전을 가져와 인간생활에 봉사를 해온 것이다. 지금은 비록 부담없이 쓰이고 있는 약재 하나하나가 실지 우리의 병중에 쓰이기까지는 숱한 체험과 오랜 세월을 두고 고심한 결정이라고 하여야 하겠다. 살구 씨가 우리의 약재에 쓰이기까지는 그 뒤에 동봉선생과 같은 위대한 역사의 인물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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