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날이면 가끔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몇 해 전 뉴스를 통해 접한 이야기로, 한 여성이 비를 맞으며 빈 수레를 밀고 가는 노인에게 우산을 씌워준 사연이었다. 사진 속 우산은 노인을 향해 깊이 기울어 있었고, 여성의 어깨와 장바구니는 폭우로 인해 흠뻑 젖어있었다. 그 여성은 노인과 1㎞를 함께 걸었고, 헤어질 때는 봉투에 3만 원의 현금을 담아 건넸다고 했다. 이후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있었지만, 그 여성은 "별다른 일도, 특별한 일도 아니다"라며 끝내 신원을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각종 사건·사고로 마음이 무거웠던 시기, 이 기사를 통해 잠시나마 마음 따뜻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타인과 협력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가까운 사람의 권리와 행복조차 쉽게 침해하는 모습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보상 없이 타인을 자발적으로 돕는 행동, 즉 이타성은 어떻게 발달하는 것일까? 이타적 행동에는 몇 가지 핵심적인 능력이 요구된다. 첫째는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함께 느끼는 공감 능력, 둘째는 타인의 생각을 그 사람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조망수용 능력이다. 이 두 능력은 생각보다 이른 시기에 나타난다. 예를 들어, 18개월 된 유아도 다친 사람을 보면 관심을 보이며 안아주거나 달래려는 행동을 한다. 만 2세가 되면 타인의 욕구나 감정 상태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며, 나이가 들수록 타인의 의도와 목표도 점점 더 정교하게 파악하게 된다. 즉, 이타적 행동은 외적 보상이나 사회적 규범보다는 타인의 감정과 생각, 관점을 이해하는 능력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이러한 능력을 모두 갖췄다고 해서 항상 이타적인 행동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상황적 요인 또한 큰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도움을 줄 대상에게 책임감을 느낄 때 이타적 행동이 더 쉽게 나타난다. 그래서 우리는 낯선 이보다는 가족이나 친구에게 더 적극적으로 도움을 준다. 또한 자신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느끼는 유능감도 중요한데, 예를 들어 수영을 못 한다면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려는 마음이 있어도 행동으로 옮기기 어려울 수 있다. 기분도 큰 역할을 한다. 긍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는 타인을 도울 가능성이 높아지고, 반대로 부정적인 감정이 강할 때는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기 쉽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이타성을 키우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린 시절 가정에서의 경험이 그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부모가 친사회적 행동의 모델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가 타인을 돕는 모습을 자주 보여줄수록 아이는 공감 능력을 잘 발달시킨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훈육 방식이다. 부모가 따뜻하고 일관된 지침을 제시하며, 아이가 타인의 감정과 입장을 생각해 보도록 유도하면 친사회적 행동이 촉진될 수 있다. 훈육의 초점이 중요한데, 처벌보다는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고민하게 하는 접근이 더 효과적이다. 직접적인 경험 역시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자원봉사에 직접 참여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경우, 아이는 타인의 필요에 더 민감해지고 돕는 행동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처럼 이타성은 타고나는 고정된 특성이 아니라, 인지적·정서적 능력의 발달과 가정 및 사회에서의 지속적인 훈련과 모델링을 통해 길러질 수 있는 성향이다. 아이들에게 "착하게 살아라"고 말하기보다는, 어른들이 먼저 타인을 배려하고 도우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다. 비 오는 날, 낯선 노인에게 우산을 내어준 작지만 깊은 배려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은 것처럼, 일상의 소소한 이타적 행동들이 서로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