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되기

2025.04.29 14:45:30

조준호

수필가

며칠 전 서울에서 모임이 있어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일이 있었다. 무심코 눈길을 준 곳에 교통약자석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낯설었다. 경로석이 아니었나·

별 생각 없이 그 문구를 바라보고 있는데 의자에 앉아 있던 사람이 어르신 여기 앉으세요라며 일어섰다. 등산모임을 다녀오느라 모자를 쓰고 등산지팡이까지 들고 있었으니 갓 환갑을 넘긴 내가 노인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더구나 그 문구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자리 양보를 기대하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르신'이라니. 당황스럽고 멋쩍어 사양한 뒤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전적 의미로 어른은 다 자란 사람,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또는 나이나 지위가 자기보다 높은 사람이라 정의되어 있다. 다 자라서 성인이 되면 누구나 어른이 되지만 공경받는 어른, 자기 일에 책임질 줄 아는 어른은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진정한 어른은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다. 말보다 삶의 태도에서 묻어나는 깊이가 먼저 다가온다. 어른이 되는 것은 시간의 몫이지만 존경받는 어른이 된다는 건 살아낸 방식의 결과가 아닐까.

전통적으로 어른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한 마을의 지도자로서 공동체를 유지하는 역할에서부터 교육을 담당하기도 했고 전통의 전달자 역할도 했다. 또한 마을 구성원들 사이에 다툼이 있으면 이를 중재하기도 했다. 구성원들이 마을 어른을 공경하고 따를 수 있었던 것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진정한 어른이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이러니 어른 되기가 어려운 법이다. 요즘 대선을 앞두고 각 후보들의 공약이 쏟아진다. 수많은 말이 오가고 각자의 주장이 때로는 높고 거칠다. 후보 모두 이미 다 자랐으니 어른은 되었는데 존경받는 어른인지는 알 수 없다. 갈래길에서 서로 자기의 길이 옳고 상대방이 제시하는 방향은 그르다 한다. 심지어 같은 길을 두고 다른 길이라 하기도 한다. 상대의 살아낸 방식이 옳지 않으니 가리키는 길도 부정한다. 가고자 하는 길은 바라보지 않고 지나온 길로 갑론을박하며 현상과 본질이 뒤바뀌는 형국이다. 각자의 이름과 목소리가 분주하게 오르내리지만 진정한 어른으로서 갈라진 마음을 잇고 내 길이 아닌 국민이 가야 할 길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존경받는 어른 한 사람이 절실한 시절이다. 그래야 그 길을 믿고 따라가며 망설임 없이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선거 때마다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일 뿐이고 기원전 6세기 아테네처럼 제비뽑기로 공직자를 뽑았던 이야기가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 오늘이다. 그런 선거가 아니기를 바라면서 나 자신도 돌아본다. 나는 과연 다 자란 어른일 뿐인가, 아니면 존경받는 어른이 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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