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생의 그림과 이야기 - 모필의 아름다움

2013.03.14 16:00:35

4편: 모필의 아름다움

ⓒ강호생
하루는 설레는 가슴을 안고 인사동을 향했다. 그 곳은 나의 대학시절 꿈과 낭만과 예술가로서의 토대를 산출했던 곳이다. 예전에 비해 지금은 그 맛을 잃었지만 아직도 향수는 여전하다. 각종 지업사들과 화방들에서 흘러나오는 특유의 냄새들은 아련한 옛 추억을 더듬기에 충분하다. 붓 한 자루를 구하러 이 곳 저 곳을 다니는 발걸음은 디딤 디딤이 무척이나 소중했다. 구입한 붓 한 자루를 들고 다니는 마음은 얼마나 뿌듯한지... 붓은 나에게 있어서 마술피리와도 같다. '심중작화'라 했듯이 내재된 심상을 한지에 토해낼 때는 무아지경속의 기쁨과 정적의 쉼이다.

대개 붓의 재료는 노루 털, 족제비 꼬리털, 노루 겨드랑이 털, 양털, 너구리, 돼지, 말갈기 등이 쓰이는데, 준비된 털은 잘 빗겨 쪄 내고, 삼각 모양을 만들어 악모를 제거한다. 후에 풀 먹임 과정을 거치고 고운 머릿결 같은 윤기를 흐르게 하여 마치 은근미가 겸비된 선비의 정신이 서려 있게 제작하고자 하는 것이 제작자들의 마음가짐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화구(畵具) 중에서 모필(毛筆)이 제일이라고 하였던가· 오늘은 모필이 만들어 내는 '선(線)'의 개념과 아름다움에 대하여 공부해보자. 붓 끝으로 토로하는 모필의 방대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필선(筆線)의 형태 가치에 있어서 동양회화에서는 운필법이나 그 기능 및 작가 정신을 표출하는 데 있어서 하나의 상징처럼 되어 있는 '선(線)'의 효과는 매우 크다. 흔히 동양회화를 선의 예술 혹은 상징의 예술이라 지칭함은 선을 기본개념으로 하여 화면을 전개시켜 나가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리는 데에 있어서 동·서양이 모두 선을 중요시 여기는 것은 작품을 제작할 때 선은 기본요소이다.

보통 동양 미술 중에서 중국 미술을 '形態', 일본을 '色彩'의 예술로 보는 데 특히 동양 미술 속에서 차지하는 한국 미술의 특성은 한마디로 말해 '線'의 예술로 보는 것이 통례라 하겠다. 서양회화에서 선이란 이미 오래전부터 '대상을 떠내는 윤곽선'으로 생각해 왔으며, 형태와 형태 사이에 나타나는 '경계'를 선으로 인식해 왔다. 물론 근대에 와서는 이런 생각이 많이 수정되어 선 자체의 고유한 생명력을 인정하려는 추세가 엿보이지만 과거 서양회화에서는 선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것 같다. 서양의 이와 같은 선의 관념에 비하여 동양에서는 처음부터 선의 중요성이 인지되고 강조되어 왔다. 동양의 선은 단순한 대상의 윤곽을 떠내는 경계선이 아니라 어떤 대상이 지니고 있는 생명감을 불러일으키는 기운(氣韻)의 현현(顯現)으로 이미 그 자체로서 완결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하기야 지금도 선의 맛에 대한 개념 없는 작가들이 즐비하다. 수묵화 및 문인화의 선묘가 단순히 디자인적 요소로의 만화라 치부하여 열을 내며 애써 설명하려 드는 백성들이 많다. 이 모두는 스스로 무식함을 드러내고 있다고 하겠다. 선은 그 자체가 감정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작가가 의도하는 바에 따라서 선택적으로 취하여 자기의 정신적 표현으로 조형화 할 수 있는 것이다. 기하학적으로 생각할 때 선은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인데, 이것은 점이 움직여 나간 흔적, 다시 말해 점이 만들어 낸 소산이다.

이와 같이 모필에 의해 산출되는 선(線)은 화가의 개성적인 감정의 표출수단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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