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의 경고, 농업생산기반시설 재정비로 응답해야

2025.05.27 18:10:53

유종상

한국농어촌공사 충북지역본부 수자원관리부장

2025년 3월 22일, 경북 의성군에서 시작된 대형 산불은 경북 전역을 넘어 동해안 영덕까지 확산 되며 9만9천289㏊(992.8㎢)의 산림을 집어삼켰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단일 산불 기준으로 가장 넓은 피해 면적이었다. 이 재난으로 31명이 사망하고, 44명이 부상했으며, 무려 3천307여 명이 피난길에 올랐다.

문화재와 민가, 주요 인프라가 피해를 입었고, 농촌 지역은 회복이 어려운 타격을 받았다.

물론 산불의 직접적 원인은 성묘객의 실화나 쓰레기 소각과 같은 인간의 부주의로 돌릴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 즉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의 발현에 주목해야 한다. 극심한 기상 이변은 산불을 포함한 폭우, 강풍, 폭염, 가뭄 등 각종 자연재난을 일상화시키고 있으며, 이는 곧 농업생산기반시설의 선량한 관리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

지구온난화는 인간 활동으로 인해 이산화탄소, 메탄 등 온실가스가 대기 중에 증가하면서 지구 평균기온이 상승하는 현상이다. 그 결과 기후 시스템은 정상적인 패턴을 벗어나 폭염·집중호우·가뭄·한파 등의 기후가 극단적인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2023년 장마철(6월 25일~7월26일) 동안 전국 평균 강수량은 평년(356.7mm) 대비 85% 이상 많은 660.2mm를 기록했으며, 남부지방의 경우 2022년부터 2023년까지 227.3일에 이르는 기록적인 가뭄에 시달렸다. 산불 역시 2023년 한 해에만 596건 발생해, 최근 10년 평균을 웃돌았다. 이는 이상기후가 자연재해의 '새로운 평범'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우리는 이런 변화에 맞서, 농업생산기반시설의 재해 대응 능력을 근본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

첫째, 배수개선사업의 설계기준 변경이 필요하다.

기후 변화로 인해 벼 중심의 농업 방식이 타작물 재배로 전환되고 있는 만큼, 농지의 범용화를 위한 기반 정비가 필요하다. 과거에는 사업비 절감을 위해 일정 시간의 담수를 허용했지만, 이제는 고부가가치 작물 재배에 적합한 배수 설계를 새롭게 수립해야 한다. 정부 역시 청년 농촌 유입을 위한 스마트팜 혁신밸리 구축, 공익형 직불제 도입 등 정책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에 발맞춰 배수개선사업의 설계 기준도 20·30년 빈도에서 그 이상으로 상향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둘째, 저수지의 선제적인 성능 개선이 필요하다.

농업용 저수지는 단순한 농촌용수의 저장 시설이 아니라 농촌의 숨결을 담은 그릇이다. 하지만 현재 국내 저수지의 70~80%는 준공 후 50년 이상 지난 노후 시설로, 극한 호우나 지진 등 복합 재난에 매우 취약한 상태다. 신규 저수지 개발이 환경적·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기존 시설의 내진 보강과 사전 방류시설의 설치, 실시간 계측 시스템 확대 등을 통해 내구연한을 현행 60년에서 100년까지 연장하는 개선 방안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셋째, 재난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또한 달라져야 한다.

설계빈도는 시설물의 중요도에 따라 달라지며, 대형 농업용 저수지(유역면적 2천500ha이상, 저수용량 500만㎥)의 경우는 가능최대홍수량 PMF(Probable Maximum Flood)를 기준으로 설계되기도 한다. 그러나 2023년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고처럼, 50년 빈도의 한계를 넘어선 폭우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는 현실은 기존의 설계기준이 최근 발생하는 이상기후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여실히 보여줬다고 하겠다. 따라서 우리는 단순히 설계기준을 높이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재난을 예외가 아닌 일상으로 인식하고, 시민과 정부 모두 일상적인 대비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기후 위기는 이미 시작되었고, 더는 되돌릴 수 없는 지점에 도달했다는 경고음이 연이어 울리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우리는 농업생산기반시설을 비롯한 사회 인프라 전반에 걸쳐 이러한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것이 농촌의 지속가능성을 지키고, 국가 전체의 재난 대응 역량을 높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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