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즈에서 아티스트로

2025.03.10 14:51:18

구본숙

미술평론가·수필가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은 고행에 가깝다. 그것을 위한 여러 가지 조건이 부합해야만 하고 인생 전반에서 피나는 노력도 뒤따른다. 그 과정에서 포기해야 할 중요한 것들도 있다. 가난하고 불우한 집안의 딸로 태어나 마침내 꿈을 이루며 여류화가가 된 수잔 발라동(Suzanne Valadon, 1865-1938)의 삶은 우리에게 많은 감동과 희망을 준다.

아버지가 없었고 어머니와 함께 생계를 위한 일을 하며 살아야 했던 발라동은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15세에 서커스 단원이 된다. 그마저도 높은 곳에서 떨어지며 부상을 입고 그만두게 된다. 이후 몽마르트 화가들의 모델이 된다. 당시 몽마르트는 예술가의 집결지였기 때문에 모델 일을 할 수 있었고 화가와 모델로서 서로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그녀는 모델이었지만 화가의 꿈을 꾼다.

인상주의 화가 르누아르는 발라동을 사랑했으며 그녀의 모습을 밝고 아름답게 묘사한다. 둘 사이에 아들도 태어났다. 아들은 자라서 훗날 화가가 되는데 그가 바로 모리스 위트릴로이다. 아들도 있었지만 둘의 관계는 오래가지 않았다. 이후 발라동은 툴루즈 로트렉의 모델이 되었다. 로트렉은 그녀의 내면을 바라보았고 작품으로 표현했다. 로트렉 역시 아픔을 안고 살았기에 고통스럽고 삶에 지친 모습의 그녀를 볼 수 있었다. 발라동의 본래 이름은 '마리 클레멘타인'이었다. '수잔 발라동'이라는 이름은 로트렉이 지어준 것으로 화가로서 이 이름을 계속 사용하게 된다.

피아니스트 에릭 샤티도 그녀에게 영감을 받았다. 그녀를 사랑하여 작곡한 피아노곡 '난 너를 원해'는 애잔하고 서정적인 음색이 특징이다. 그녀와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을 몹시 슬퍼했고 30년간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고 한다. 뮤즈로서 영감은 미술작품에만 국한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로트렉은 그 당시 미술계의 대가인 드가에게 발라동을 소개해주며 드가의 모델이 되었다. 발라동은 화가들의 모델을 하며 어깨너머로 미술 기법을 터득하고 틈나는 대로 연습했다. 정규 미술교육을 한 번도 받지 않았지만, 실력을 키워나갔다. 드가는 발라동의 재능과 노력을 알아보았다. 이 시기 발라동은 부유한 은행가를 만나 결혼한다. 결혼과 더불어 화가로서 활동하게 된다. 모델을 하며 키워온 화가의 꿈을 이루게 된 것이다.

발라동은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고, 가난과 고달픔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화가라는 꿈을 꽃피웠다. 오히려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기에 전통에 매몰되지 않고 자유로운 느낌을 표현할 수 있었다. 발라동은 주로 정물, 인물, 풍경 등을 그렸으며 윤곽선을 검게 그려 시원한 느낌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인물을 묘사할 때도 과장하거나 미화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자신만의 화풍으로 그려나갔다.

그녀는 그림 안에서 당당하게 걸어 나왔다. 화가가 된 그녀는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상징주의와 후기 인상주의 화가로서 미술사에 큰 획을 그었다. 어려움 속에서도 꿈을 이룬 그녀는 또다시 꿈을 꾸는 이들에게 희망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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