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는 여성

2019.08.07 17:57:38

구본숙

미술평론가·수필가

 한 여인에게 질문을 했다. 어른이 되고서 가장 좋았던 점을. 여인이 대답했다.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재미있는 대답이었다. 그녀가 유쾌하고 유머감각이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고교 졸업 후 평범하게 대학을 다니다 학업을 접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살았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한 남성을 만나 사랑하게 됐고 결혼이야기가 오가는 사이가 됐다. 이 남성은 변변치 못한 직업을 가졌고 왜소했으며 나이 차이도 아주 많이 나는 남성이었다. 대부분 이 결혼을 만류했지만 그녀는 사랑의 힘으로 극복해 보고자 했다.

 결국 결혼에 이르지는 못했다. 남성의 좋지 못한 행동 때문이었다. 사랑의 상처를 받은 그녀는 아르바이트로 모은 일정 금액으로 한동안 타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다녀온 후 사랑의 상처를 극복하고 영어실력을 키워 명문대에 가까운 원하는 대학에 편입을 하게 됐다. 졸업 후 주위에서 대기업에 취업하기를 고대했지만 군대를 택했다. 장교로도 지원 자격이 가능했지만 일정계급 승진을 하지 못하면 전역해야하는 직업적 특성 때문에 안정적인 부사관을 택했다. 그녀는 우수한 실력으로 부사관 시험에 통과했다.

 직업을 갖게 되자 이제 가정을 꾸리기를 원했다. 그러나 꾸미지 않은 수더분한 외모와 남성적인 성격으로 인해 자신을 좋아해 줄 남자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녀는 가꾸면 충분히 괜찮은 외모였고 괄괄한 성격 역시 매력이었지만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안정적인 직업과 대학졸업의 학력을 갖춘 그녀였지만 아주 가난하고 매력이 없는 남성과 만나게 됐다. 그 이유는 이 정도로 보잘것없는 남성이라면 자신도 만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안타까웠지만 영문을 모른 채 그녀의 사랑을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녀의 결혼식에 가게 됐다. 결혼식장에서 만난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와 달리 아주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이후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을 다녀온 그녀를 시내에서 다시 만났다. 작은 선물과 함께 고마움을 표하는 그녀는 마냥 행복해 보였다. 여행을 즐겁게 잘 다녀왔으며 남편과도 잘 맞았다고 이야기 했다. 어떤 점이 그렇게 잘 맞았냐고 질문했다. 쑥스러운 듯 웃으며 여행지에서 쇼핑을 잘 하지 않는 점이 잘 맞았다고 답했다. 이런저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다 불쑥 그녀가 안타까운 이야기를 힘겹게 꺼냈다.

 사실 그녀의 어머니가 철없이 아름답게 꾸며 아버지와 이혼을 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어린 그녀의 마음에 큰 상처가 됐음이 분명했다. 그녀가 자라서 가꾸고 꾸미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결혼식을 앞두고 아버지에게 오랜만에 전화를 했지만 매몰차게 그녀를 대했다고 한다. 이제는 시간이 흘러 괜찮아졌다며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웃으며 이야기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제 하고 싶은 것도 하며 즐겁게 살고 싶다고 했다. 나에게 언니처럼 그림도 그려보고 싶다고 했다. 필자는 초보자가 쉽게 접할 수 있는 드로잉 책을 추천하며 그녀를 응원했다.

 얼마 후 그림을 그리고 있노라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어렵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처음에는 어색했으나 자꾸 그리도 보니 무아지경에 빠져 나름 재미있다고 대답했다. 훗날 그림을 많이 그려 동화책도 출간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동화에 담긴 아름다운 이야기와 함께 그림을 그려 또 다른 꿈을 펼쳐보고자 하는 그녀였다. 이미 그녀는 동화 작가나 다름이 없다. 인생에 있어 역경을 극복하고 아름다운 스토리를 만들어 가는 그녀의 삶이야말로 더 없이 아름답고 감동적인 동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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