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는 소리

2021.08.31 16:59:05

김경숙

청주시 문예운영과 문예운영팀장

음식물 쓰레기통 갓난아기의 소식, 잔소리한다고 친할머니를 살해한 손자의 이야기 등 상상도 할 수 없는 뉴스가 쏟아지는 하루하루.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무엇이 문제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다 답답함을 풀어보려고 동네 한 바퀴를 걷는다.

가을을 재촉하는 듯 끊이지 않는 풀벌레 소리가 여유롭지 못한 마음을 달래준다. 어디에 숨어 있을까. 조용히 다가가 봐도 소리만 들린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풀벌레 소리에도 마음은 고요해지는데 무엇이 이토록 가슴을 답답하게 할까.

여기저기서 보이는 거리두기란 단어가 언젠가부터 가슴을 무겁게 누르고 있다. 오래가지 않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너무도 오랜 시간 인간의 자유로움을 통제하고 있다. 늘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해오던 행사들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보이지 않는 아주 무서운 존재가 인간을 나약하게 한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그 속에서 변화하는 자연의 소리가 마음을 위로해준다. 에어컨 없이는 잠을 잘 수 없던 한 여름의 무더위도 어느새 서늘함에 이불을 덮어야만 잠이 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집에 돌아와 뉴스를 보니 9월의 시작을 알리는 첫날은 비가 많이 내린단다. 그 비에 우리를 힘들게 하는 온갖 것들이 쓸려 내려갔으면 좋겠다. 비 온 뒤 맑은 하늘 깨끗한 거리에 답답한 마음도 풀렸으면 하는 기대를 해본다. 벼가 누렇게 익은 들판도 코스모스가 피어 있는 꽃길도 맘껏 걸어보고 싶다.

심란한 마음에 청소기 전원을 켠다. 처음엔 알아서 척척 한다는 광고와 맞게 청소를 잘하는지 신기해서 따라다니며 지켜봤었다. 먼저 공간을 가늠하고 혼자서도 알아서 척척 청소를 하고 제자리로 돌아와 충전을 하는 것을 보고 얼마큼 더 진화할 것인가 놀라웠다. 산업의 발달이 가져다주는 시간의 여유로움으로 내 마음도 한껏 여유로워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청소기를 장난감 친구처럼 졸졸 따라다니며 즐거워하던 애완견 가을이가 무릎에 올라와 앉는다. 이제 우리 집에 와 함께 지낸지도 사 년이 돼 간다. 태어난 지 두 달도 안돼서 주인에게 버림을 받고 처음 우리 집에 왔던 기억이 새롭다. 물고 뜯고 말썽꾸러기였던 가을이가 소리만 듣고도 주인의 감정을 읽고 의젓해졌다. 귀엽고 사랑스럽다. 내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가끔씩은 나를 보호해주려는 위엄도 보인다. 어느 날 언니가 사진 몇 장을 보내왔다. 조카가 키우는 강아지 블리를 언니가 당분간 맡아 키우고 있단다. 하얀 털이 복스럽게도 생겼다. 떡 벌어지게 생일상을 받은 블리의 모습도 담겨 있었다. 생일 케이크를 앞에 두고 방긋 웃는 모습을 하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반려견 생일을 축하해주는 문화가 있다는 것이다. 반려견 생일파티라고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생일상은 물론이고 고깔모자에 장식 용품까지 모두 다 갖춰 판매를 하고 있다.

풀벌레 소리를 듣고 가을이 오는 소리라고 느끼는 나와는 달리 반려동물 생일파티를 하는 젊은이들은 가을이 오는 소리를 무엇으로 느낄지 궁금해진다. 또 나와 다른 세대를 살아온 어머니와 할머니 세대는 계절의 변화를 무엇으로 느꼈는지. 세상은 변하고 있다. 그럼에도 서로를 존중하고 위하는 인간의 근본이념은 변하지 않아야 하지 않는가.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고 사람의 도리를 다하는 삶. 생명은 소중하지 않은가. 생명을 중시하지 않는 사건사고 속에서 바이러스로 고달픈 삶이 더 피폐해지지 않기를 소망해본다. 서로를 존중하고 위로해주는 훈훈한 이야기가 더 많은 날을 기다려본다.

뜨거운 여름날 쉼 없이 울어대던 매미소리는 사라지고 가을을 재촉하는 풀벌레 합창 소리가 밤새 밤하늘에 울려 퍼진다. 내 마음도 답답함을 걷어내고 가을이 오는 소리와 함께 사랑으로 곱게 물들어 갔으면. 터널 속 같은 어두운 사회도 가을 하늘처럼 파란빛으로 우리에게 희망으로 다가오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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