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냉면을 들고 온 김정은

2018.04.29 13:29:43

류경희

객원 논설위원

냉면은 애초에 양반들이 먹던 음식이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대중화된 냉면은 슬금슬금 가격이 올라 다시 서민들이 사먹기엔 부담스런 음식이 됐다. 국산 메밀로 뽑은 순 메밀 냉면을 맛보려면 1만 원 권 한 장으론 어림없어졌으니 말이다.

북한은 남한보다 냉면 몸값이 더 나간다고 한다. 냉면 맛 좋기도 유명한 평양 냉면집 옥류관 냉면가격은 한 사람 당 20달러에서 40달러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옥류관 냉면은 꿩고기를 포함해 40여 가지의 재료로 만든 육수와 순 메밀로 만든 전통 평양냉면이다.

원래 냉면은 겨울철 별미음식이었다. 불을 때 절절 끓은 온돌 방바닥에 앉아 살얼음이 뜬 동치미 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었다. 냉장고가 보급되어 얼음을 쉽게 구할 수 있게 되면서 여름에도 먹게 된 냉면은 언제부턴가 여름에 먹는 별식으로 자리가 바뀌었다.

조선의 왕들도 냉면을 즐겼는데 영조, 정조, 순종, 순조, 고종이 냉면을 좋아했다고 한다. 조선 말기의 문신 이유원이 집필한 '임하필기' 춘명일사 편에 순조 임금의 냉면 사랑이 기록돼 있다.

군직과 선전관을 불러 달을 감상하던 11살의 순조가 어느 날 군직을 불러 "너희들과 함께 냉면을 먹고 싶다"며 냉면을 사오라며 명했다. 냉면 회식을 하려는데 한 신하가 돼지고기를 꺼냈다. 순조가 궁금해 돼지고기의 용도를 묻자 그는 제가 먹을 냉면에 넣어 먹으려고 가져 온 것이라 대답했다. 그 말이 순조에겐 아니꼽게 들렸나 보다.

순조는 돼지고기를 챙긴 자를 물리쳤다. "저 자는 따로 먹을 물건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는 순조의 말 속에 어린 임금의 편치 않은 심사가 엿보인다.

특히 냉면을 좋아한 임금이 고종이다. 생일 등 특별한 날엔 냉면이 항상 주식으로 올랐다.

"고종께서 즐겨 드시던 냉면은 배를 많이 넣어 담근 동치밋국이 특징이다. 꾸미로 편육, 배, 잣을 위에 가득 덮어 장식했으며 그 맛은 담백하고 달고 시원했다" 후궁이던 삼축당 상궁 김 씨가 기록한 왕의 냉면 조리법이다.

순정효황후 윤 씨를 모신 김명길 상궁이 구술한 '낙선재 주변'에는 고종에게 올린 냉면에 대해 더욱 세세한 묘사가 전한다.

"냉면의 꾸미는 가운데 열십(十)자로 편육을 얹고 나머지 빈 곳에는 배와 잣을 덮은 모습이었다. 배는 칼로 썰지 않고 수저로 얇게 떠서 초승달 모양으로 만들어 국수 전체에 얹고 꾸미로 편육과 잣만을 썼다. 국물은 육수가 아닌 배를 많이 넣어 담근 달고 시원한 동치미 국을 부어 냈다" 이 냉면은 '배동치미 냉면', '고종 냉면'이라 이름이 붙어 전해지고 있다.

북한 평양 옥류관 냉면이 이번 남북정상회담 만찬장의 주요 메뉴라는 점이 알려지면서 평양냉면에 대한 대중이 관심이 뜨겁다. 북측은 직접 평양 옥류관 수석요리사를 판문점으로 파견했다. 제면기도 함께 챙겼다고 한다.

평양냉면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에 대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오늘 저녁 만찬 메뉴 가지고 얘기가 많더라"며 "평양에서부터 평양냉면을 가지고 왔는데 대통령께서 편한 마음으로 평양냉면을 드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평양냉면을 특별히 언급한 것이다.

김 위원장의 발언 이후 각종 SNS에는 점심을 평양냉면으로 정했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냉면 인증 샷도 연이어 올라왔다.

냉면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은 "평양에서부터 평양냉면을 가져왔다"라고 한 김정은 위원장에게 네티즌들이 붙여 준 별명들을 보면 알 수 있다. '평양냉면 완판남'으로 등극한 김 위원장은 '배달의 민족', '평양냉면 프로 영업러'란 별명을 얻었다.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특집 뉴스를 준비한 CNN 뉴스에도 평양냉면이 등장했다. 가수 출신 요리연구가 이지연이 출연해서 평양 옥류관 냉면을 만들었는데, CNN 뉴스 앵커들이 옥류관 냉면 조리법을 지켜보며 시식하는 초유의 상황이 전 세계에 방송됐다.

남북정상회담의 긴장을 녹이는데 김정은 위원장이 공수한 평양냉면은 큰 역할을 했다. 덕분에 한반도를 넘어 세계가 주목하게 된 평양냉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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