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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경희

객원 논설위원

지인에게서 임보 시인의 시 한 편을 받았다. 제목이 미투(美鬪)다. 언어를 유희하며 세태를 풍자한 시인의 익살이 예사롭지 않다.

"진달래가 벌에게/당했다고 하니/민들레도 나비에게 당했다고 말했다//그러자//매화 산수유 복숭아 살구 자두 들이/떼를 지어 '나두! 나두! 나두!'/아우성을 쳤다//드디어/벌과 나비들 이/얼굴을 싸쥐고/은둔에 들어갔다//그래서 그 해/과일나무들은 열매를 못 달고/세상은 깊 은 흉년에 빠졌다."

몇 년 전 문정희 시인의 시 '치마'가 발표되자, '치마를 읽다가'란 부제가 붙은 '팬티'라는 답시가 연이어 나와 무릎을 치게 했었다. 치마의 응답시 '팬티'를 쓴 이가 미투(美鬪)를 쓴 임보 시인이다.

"가만 두면 사라지는 달을 감추고/ 뜨겁게 불어오는 회오리 같은 것/ 대리석 두 기둥으로 받쳐 든 신전에/ 어쩌면 신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는/ 흥망의 비밀이 궁금하여/ 남자들은 평생 신전 주위를 맴도는 관광객이다"

문정희 시인의 시 '치마'의 일부분이다. 이에 대해 임보 시인은 "그러나, 여자들이여. 상상 해 보라/ 참배객이 끊긴/ 닫힌 신전의 문은 얼마나 적막한가!"라 답했다.

품위를 따지는 이들에겐 노골적인 시어가 마땅찮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두 시에 넘치는 해학과 풍류가 미세먼지 품지 않은 청량한 바람 같았다. 그러나 이러한 풍류를 다시는 기대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어디서 미투의 돌팔매가 날아들지 두렵기 때문이다.

권력에 의한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미투'운동이 확산되면서 여성동료의 옷자락만 스쳐도 목이 움츠려드는 상황인지라 여성을 아예 배제하려는 '펜스 룰(Pence rule)'이 또 다른 직장 내 성차별로 논란이 되고 있는 모양이다.

성희롱이란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여성 동료와의 만남을 차단하자는 것을 '펜스 룰'로 인식하고 있지만, 펜스 룰은 구설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아내 외의 여자와는 단 둘이 식사하지 않는다'는 규칙에서 시작됐다.

미국의 부통령 마이크 펜스(Mike Pence)는 2002년 의회 전문지 '더 힐'과의 인터뷰에서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과 절대 단둘이 식사를 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철학을 밝혔다. 그는 "보좌관을 반드시 남성으로 임명하며, 아내를 동반하지 않으면 술을 제공하는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했다.

술을 마시고 정신이 풀어지면 그 방에서 가장 예쁜 갈색머리를 옆에 두고 싶어진다며 인간의 본성을 찰지게 요약한 부통령의 조크가 재미지다. 그러나 무조건 여성과 단 둘이 있는 기회를 차단하라는 의미가 아닌, 업무이외에 여성과 단 둘이 사심 가득한 자리를 마련하지 말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옳겠다.

마이크 펜스의 발언으로 알려져 펜스 룰이란 이름이 붙었으나 이 원칙은 1948년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제시한 룰이다. 여성신도와의 성적인 의혹을 피하고자 전도자들에게 권고한 도덕률이었는데, 이 규칙을 두고 여성과 남성을 성적인 관계로만 규정한, 지극히 성차별적인 룰이라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남성들이 생각하는 '펜스 룰'은 여자들의 과도한 반응으로 인해 남성들이 입게 되는 피해에 대한 방어벽이다. 그래서 펜스 룰의 펜스(Pence)가 펜스(fence)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펜스 룰을 미투 운동에 대한 반대행동으로 내세운 "지킨 자만이 살아男는다"란 부제의 만화 '펜스 룰'은 이러한 남성들의 생각을 대변해 관심을 받았다. 억울하게 당하지 않으려면 연애 상대인 여성과 매번 '스킨십 합의 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으로 미투를 조롱했다.

그런데 이처럼 남과 여가 대립하다가 세상은 깊은 흉년에 빠지는 것이 아닐까. 성차별이라며 펜스 룰을 국가가 나서서 법으로 다스리겠다는 것도 야단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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