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고개'는 가난한 시절을 지칭했던 단어다. 보리가 나올 즈음 망종(芒種) 때 여름 농촌은 식량부족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필자도 어린 시절 사연 많은 보리고개를 체험한 세대였다.
인가가수 진성이 부른 가요 '보리고개'는 명곡의 반열에 올랐다. 가난한 시절 배고픔을 참고 살아야 했던 가족의 슬픔이 배어 가슴에 와 닿는다.
'아야 뛰지 마라 배 꺼질라 / 가슴 시린 보릿고개 길 / 주린 배 잡고 물 한바가지 배 채우시던 그 세월을 어찌 사셨소 / 초근목피의 그 시절 바람결에 지워져갈 때 / 어머님 설움 잊고 살았던 한 많은 보릿고개여 / 풀피리 꺾어 불던 슬픈 곡조는 / 어머님의 한숨이었소'
이재춘 시인이 쓴 '엄마를 입다'라는 시 속에 보릿고개 시절의 정경이 가슴에 와 닿는다. 시인은 가난한 살림살이 때문에 자식들에게 새 옷을 사서 입힐 여유가 없었던 어머니의 한을 노래했다. '자신의 털옷을 풀어 대바늘로 자식 옷을 짤 때, 올 속에 따뜻한 사랑을 함께 짜서 나에게 입히셨다'고 술회했다.
64년전 민족일보에 근무했던 한 기자는 보리고개를 겪고 있는 영동 추풍령을 취재하고 다음과 같은 기사를 썼다. 지난 5월 14일자 신문에 실린 기사 가운데 일부를 소개 한다.
'..햇보리가 나기까지는 아직도 까마득한데 웅북(熊北)마을에는 온종일 허깃중에 지친 아낙네와 어린아이들이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 쑥과 산채를 캐야만했다. 밀가루에 쑥을 섞어 죽을 쑤어 먹는 것이 그들의 주식이라고 말하는 어느 아낙네는 '며칠이 지나면 밀가루도 떨어진다'고 절망어린 하소연을 했다. 고사리, 도라지 같은 산채는 먹기가 아까와 30릿 길을 걸어 읍내 장날에 내다 팔아 밀가루와 바꿔오곤 했는데 요즘은 산나물도 팔리지 않는다..'
충북의 맨끝 동네 추풍령은 고원지대로 농사짓기가 어려웠다. 농민들을 괴롭힌 것은 거센 바람이었다고 한다. 바람이 몰아치면 그해 농사는 망치고 만다는 것이다.
당시 농촌에는 돈이 없었다. '예년 같으면 장릿돈이나 화릿돈(立麥先賣)이 나돌아 다닐 때인데 올해 따라 이 고장에는 돈마저 말라버렸다. 아무리 비싼 이자라도 허깃증에 나자빠진 마을 사람들은 몇 되의 보리쌀, 밀가루를 얻기 위해서 빌려주는 사람만 있으면 서슴지 않고 갖다 쓴다는 것이다. 내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는 그들 앞엔 절박한 현실만이 있을 뿐이다. 무서운 고리채(高利債)에 메말라 들어가는 그들이건만 삶을 이어가기 위해 빚이라도 내야하겠다는 것이다'
24절기 중 하나인 망종(芒種)은 벼나 보리 등 수염이 있는 곡식의 씨앗을 뿌리기에 좋은 때라는 뜻이다. '망(芒)'은 벼처럼 까끄라기가 있는 곡물이고, '종(種)'은 씨앗이다. 까끄라기 곡식을 뿌리기 적당한 계절이란 뜻이다.
오늘날 농촌은 보리고개는 면했으나 점점 공동화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 빈집이 늘어 시골에 가보면 흡사 전쟁으로 폭격을 맞은 곳처럼 변해가는 곳도 있다. 이런 참상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 유적 답사를 갈 때 마다 마음이 무겁다.
빈집에는 농촌을 지키고 살다간 노인들의 잔영이 흡사 민속박물관처럼 그대로 보존 된 곳도 있다. 생전에 벽에 놓고 즐겨 보던 글씨 액자도 그대로 있다. 뒤뜰에는 쓸 만한 재현도자기가 뒹굴고 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 자식들이 짐을 치우지 않는다. 부모들이 썼던 가재도구를 도시로 가져 갈수 없기 때문에 그대로 방치해 놓는 것이다.
새 정부는 공동화 현상으로 슬럼화 되고 있는 농촌 환경을 개선하고 농촌의 삶이 복자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일대 개선책이 나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