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하불명 숨겨진 역사유적

2025.05.06 14:53:50

이재준

역사칼럼니스트

대전 둔산 선사유적은 해방이후 최대의 고고학적 발굴로 평가된 바 있다. 지난 1991년도 세상에 드러낸 이 유적은 대전 유성인근 갑천에서 찾아 진 수십만평에 달하는 규모였다.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그리고 백제시대에 걸쳐 사람이 살았던 생활유적이었다.

항시 맑은 물이 흘렀던 금강 지류 갑천 유역은 붉은색의 홍적토층으로 최고의 환경을 이루고 있다. 대전 엑스포를 앞두고 갑천 유역은 둔산 신도시와 정부 제 3청사를 신축하느라 바쁜 시간 였다.

갑천 유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갈마동에서 산 필자는 주말이면 운동 삼아 갑천 유역을 돌아다녔다. 출입 기자를 시켜 대전시 문화재 조사를 확인 한 결과 아무런 유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당시 시청을 출입하고 있는 담당자에게 특별히 시장을 만나 다시 갑천을 정밀조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대전시는 다른 대학에 긴급 용역을 주어 재조사를 실시했다. 그런데 답은 아무런 유적 징후가 없으며 둔산 신도시건설 사업이 임박하여 실기했다고 보고했다. 그런 후 다음 해 봄 드디어 둔산 개발 토목공사가 시작됐다.

일요일 필자는 포크레인이 땅을 파기 시작한 현장을 둘러보았다. 깊게 파인 구덩이서는 놀랍게도 구석기유물과 신석기 시대 즐문토기, 그리고 적색 무문토기들이 수 없이 산란했다.

필자는 이를 수습하여 당시 대전시 문화재위원이었던 모 인사와 K대학 교수를 다방으로 불러 수습된 토기를 내 놓았다. 그때 한 교수는 '이이쿠 이제 C대는 죽었다'고 탄식했다. 아무것도 없다는 유적에서 엄청난 유물이 출토됐기 때문이다.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한 문화재위원은 일요일인데도 불구 시청에 전화를 걸어 공사 중지 명령을 내렸다, 둔산을 장악했던 많은 불도저들이 일시에 굉음을 멈추고 토지공사 간부들이 황급히 대전으로 내려 왔다.

현장에서 문화재위원회가 열렸는데 학계에서 존경 받고 있는 원로교수의 발언이 잊혀 지지 않는다. 발견자인 내 앞에서 '선사인들이 지나가다 그릇을 깨뜨리고 갔겠지..'하며 대수롭지 않은 유적이라고 일갈했다.

아무리 둔산 도시건설이 시급하다고 해도 유적에는 16개 대학이 참여 보물찾기 식 발굴사업이 진행되었다. 토지공사나 본래 유적이 없다고 보고서를 낸 대학박물관 책임자는 나를 송충이를 대하듯 쳐다보았다.

긴급 구제 발굴로 드러난 유적에서는 구석기 유물이외 신석기, 청동기 집자리등 수많은 유적이 찾아졌다. 대전 괴정동에서 출토 된 농경용 청동기 문화를 뒷받침하는 유물이 수 없이 쏟아진 것이다.

지금의 둔산 청사 자리에서는 20여m에 달하는 유적층위가 찾아졌으나 본인의 주장에도 불구 토지공사는 그냥 묻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못내 아쉬운 것은 이 층위를 보존하고 3청사를 건설했다면 아마 문화유적 보존의 세계적인 사례가 되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현재의 둔산 유적 보존을 놓고도 시련이 많았다. 당시 열렬히 지지해 주셨던 연세대 고 손보기 박사님과 끝까지 힘을 실어준 이융조한국선사문화연구이사장, 지금은 고인이 되신 황수영, 정영호 교수님의 성원을 잊을 수 없다.

등하불명이란 말이 있듯이 문화유적은 가까운 곳에서도 눈에 띄지 않으며 소외된다. 이번에 서울 안산에서 찾아진 후기 구석기 유적과 백제 한성 왕도시대 토성의 확인은 뜻밖의 수확이었다.

우리나라 선사유적연구의 주축으로 활약하고 있는 한국선사문화연구원이 개원20주년을 맞이했다고 한다. 청원두루봉 동굴, 단양 수양개 유적, 청주 소로리 볍씨 유적 등의 발굴과 세계적 가치로 부상시키는데 공헌해 온 이융조이사장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일실 위기의 유적을 지키는데 힘써 노력한 열정도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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