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들과 딸이 빨래건조기를 선물로 들여주었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지만 이 나이에 덥석 받는 뻔뻔함까지 생겼으니 슬며시 웃고야 만다. 작년에 딸애가 친정에 머물면서 장마철이었던 만큼 빨래 말리는 일이 오죽했을까.
아들이 하는 말, 신세계를 볼 것이라 한다. 정말 그랬다. 건조기에서 보송한 빨래를 만나는 기분은 산뜻했다. 이제 장마철이 와도 걱정일랑 없을 것 같다. 심지어 웬만한 침구까지도 건조해 주는 위력이 대단했다. 흔히들 사용하는 건조기가 나와는 상관없는 물건인 줄 알았던 참인데 이렇게 극찬하게 될 줄 몰랐다.
건조기의 사용이 습관화되면서 옛날을 떠올린다. 어릴 때 노닐던 마당의 풍경 속으로 달려가는 내 모습을 발견하면서이다. 바람마저 순하고 보드랍다. 그러나 가끔은 뜻하지 않았던 비바람도 있었을 터인데 어떻게 빨래를 말리며 살았는지 기억이 가뭇하다. 지금은 가전의 혁명이 자리한 시대, 그 편리함에 뒤에 숨어서 멀어진 과거를 자꾸만 회상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마당의 빨랫줄에다가 젖은 옷가지를 걸치면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어져 버린다. 바로 그때 신기한 물건이 등장해서 빨래들을 살아 있게 만들어 주는데 그 이름 바지랑대이다. 적당히 긴 나무의 가지를 다듬어 만든 마치 두 개의 손가락처럼 생겼다. 무거워진 빨래 줄을 지탱해서 하늘로 향하도록 하기는 최고의 도구이다.
문득 아버지의 휘어지는 허리가 떠오르고 있다. 맞다, 아버지는 우리 가족의 바지랑대 셨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여럿의 자식들을 키워내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을까. 그때야말로 너나 할 것 없이 형편이 어려웠거늘 그래도 오늘까지 내가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혼자의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했다. 보이지 않는 어떤 힘, 부모와 형제가 서로를 받쳐주고 기댈 수 있도록 해준 덕분이 분명하다.
가전의 흐름이 여러 분야로 급속하게 발전해 가는 오늘이다. 자연의 힘으로 빨래가 마르는 풍경은 이제 귀하고 드물어졌다. 일기마저 고르지 못할뿐더러 공해가 많아진 현실은 이렇게 삶의 습관을 바꾸어 놓았고 적응토록 만들었다. 그러나 가끔은 불편하면서도 청정했던 그 시절이 왠지 그립다.
끝내 변하지 않아야 할 것들을 들추어낸다.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어도 가슴 속에서 잔잔히 움직이는 마음의 움직임들이다. 그것이 서로를 지탱 해주는 바지랑대라 하고 싶다. 가장 가까운 가족과 이웃 나아가서 더 넓은 사회 속에 이런 바지랑대가 많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역할이 합당하게 작용해서 분쟁과 갈등일랑 사라지는 세상이 되길 바랄 뿐이다. 오늘도 나를 버티게 하는 이모저모 소중한 바지랑대들을 찾아낸다. 모두가 은혜이며 버팀목으로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