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옛날 국토의 중앙을 찾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은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거리를 계산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던가. 그러나 선조들께서 지혜로운 발상으로 그 지점을 찾는 일에 애썼다는 증거를 알고는 놀라고 말았다. 국보 제6호, 중앙탑을 둘러보면서이다.
이곳이 국토의 중앙이라는 재미있는 설화가 있다. 통일신라시대 원성왕이 우리나라의 중앙을 알기 위해 국토의 남과 북, 끝 지점에서부터 같은 날 같은 시에 보폭이 같은 사람을 출발시켰다고 한다. 그 두 사람이 만난 곳이 바로 충주의 중앙탑이라나. 남과 북의 반이 되는 지점, 곧 한국의 중앙을 뜻하며 반내(半川)라 지명하고 있으니 충분히 이해가 간다.
중앙탑은 7층으로 쌓아졌다. 통일신라시대 중에서도 규모가 가장 큰 석탑이라고 한다. 자세히 보니 섬세하기까지 하다. 돌 한 장, 한 장에서 장고한 세월이 묻어나는 것을 어찌 지나칠까. 사람의 손으로 돌을 깎고 다듬어서 쌓았을 과정에 대해서도 머리를 숙여야만 했다. 오랜 세월에 풍화된 모습이며 더러는 보수까지 견뎌낸 흔적조차 문화재의 가치를 조용히 설명하고 있다.
옛것을 지켜낸 것에 대에 감탄을 아끼지 않는다. 시대가 변화된 가운데 주변 경관이 좋아지면서 중앙탑은 이름난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그리 복잡하거나 찾기 힘들지도 않아 사시사철 사람들의 발걸음을 부른다. 공원 안에 조성된 박물관, 그리고 조경과 전시물들조차 사람들에게 휴식 공간으로 부족함이 없다. 곁의 탄금호마저 세계적인 조정경기장이 되었으며 물의 도시라는 자랑을 이어가는 중이다.
반내라는 이름이 정겹다. 국토의 중앙이라는 점과 잔잔한 호수를 항상 볼 수 있는 즐거움에 중앙탑을 자주 찾는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에는 파란 하늘과 흰 구름조차 그곳이 더 넓게 보인다.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과 함께 물을 표현하는 내(川)라는 새로운 이름마저 이곳의 역사를 더듬도록 하니 감회가 깊다. 탄금호와 중앙탑, 교통의 접근성까지 좋아 각종 행사나 영화촬영지로도 이용되고 있다.
중심에 대해서 새삼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서 있는 구심력을 잃으면 무너지기 십상일 수밖에 없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스스로 다스려가는 지혜와 좌우로 치우치는 일이 없어야만, 미숙할지라도 존재해 갈 수 있다는 것을 새기게 한다. 우뚝 서 있는 중앙탑이 오랜 세월 나라의 안녕을 지켜온 것처럼, 내 마음에도 견고한 탑 하나 세워가라 이르는 듯하다. 작을지언정 그런 탑 하나 내 안에 존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유유히 흐르는 탄금호에서 헤엄치는 물오리 떼가 더없이 평화로운 오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