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가능한 도시(Swimmable City)

장소와 사물

2025.02.18 14:17:36

이정민

청주시청 도시계획상임기획단·공학박사

수영으로 퇴근하는 사람들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호수와 강이 많은 스위스에서의 일이다. 강물은 푸르렀고, 물살이 세서 몸을 가만히 맡기기만 하면 되었다. 퇴근길이 이렇게 즐거울 수 있다니. 다리 위에서 지켜보는 사람들도, 하류로 떠내려가는 사람들도 환하게 웃고 있었다. 맨살로 물속에서 느낄 청량감과 자유로움이 부러웠다. 집에 도착하면, 하루치의 피로와 스트레스가 자연스레 풀려있을 것이다. 이완된 몸으로 퇴근 후의 일상도 산뜻하게 다시 시작할 수 있겠지.

# 세계의 공공 노천 수영장

아이슬란드에는 블루라군과 순드홀이 있다. 블루라군은 울퉁불퉁한 화산 지형을 따라 형성된 노천탕이고, 순드홀은 지열을 이용한 공공수영장이다. 블루라군은 세계적인 관광지이고, 순드홀은 유명 건축가 구뒨 사무엘손이 현대적으로 디자인하여 지역의 명소가 됐다. 다른 사례도 많다. 호주 시드니에는 '본다이 다이스버그 클럽'이, 미국 텍사스 오스틴 하천에는 1만2천140㎡ 크기의 인공수영장 '바톤 스피링스 풀'이, 코펜하겐에는 '하버 배스'가 있다. 지형이나 하천을 이용한 노천 수영장이 도시의 훌륭한 공공공간의 역할을 한다.

런던에는 생태수영장이 있다.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경기 하락으로 킹스크로스 재개발 사업이 멈추고, 개발 예정지는 방치되었다. 캠든구청은 유휴공간을 2년 동안 임시 수영장으로 활용하기로 결정했다. 특히 공공미술설치기금을 생태수영장 조성에 지원했는데, 공공미술품의 범위를 환경 설치물로 확장해서 지원을 결정한 것이 큰 역할을 했다. 생태수영장은 '도시와 자연과의 대화'라는 주제로 물, 토양, 그리고 인간의 자연적인 순환과 자생력을 표현했고, 습지와 정화 식물을 이용해 물을 여과하는 자연 밀폐 공정을 도입했다. 생태수영장은 개장 이후 지역 주민들의 여가시설이자 커뮤니티 장소로 활용됐다. 관광객도 증가했다. 방문객만 연 2만 명 이상, 주변 유동 인구는 연 50만 명 이상으로 증가했다. 개발사업이 재추진되면서 킹스크로스 생태수영장은 이제 사라졌다. 하지만 도시 내 방치된 유휴부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창조적이고 근사한 해답을 제시했다.

# 수영할 권리, 수영 가능한 도시

도시에서 수영할 권리를 주창하는 사람들이 있다. 'Swimmable Cities'가 그들이다. 도시를 수영 가능한 장소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와 캠페인을 추진하는 글로벌 네트워크다. 수영할 권리는 하천, 강, 운하, 호수 등 다양한 수로의 수질을 개선하는 환경운동이자, 건강과 사회적 교류를 통한 커뮤니티의 부활이며, 안전한 물 접근성에 대한 권리이기도 하다.

수영할 권리에 응답하듯, 파리는 센강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산업화로 센강의 수질이 나빠지자 파리는 1923년부터 수영을 금지했다. 그로부터 100년 후, 파리는 강의 생태계를 복원해 '수영 가능한 센강'을 시민에게 제공하기 위한 대규모 환경 복원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그리고 파리는 센강에서 2024년 올림픽 개막식과 트라이애슬론 경기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센강은 이제 환경 복원과 수로 활용 가능성에 대한 영감을 주는 성공 사례가 되었고, 파리는 생태적이고 혁신적인 도시 이미지를 완성했다.

수영 가능한 도시는 도시의 '생태력'을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 목욕탕이 사라진 자리에 수영장을 원하는 시민들의 욕구가 커지고 있다. 염소 처리된 수영장 대신, 생태적인 노천 수영장이 가까이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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