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지명산책 - 수레넘이

2016.07.27 16:01:38

이상준

전 음성교육장·수필가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현암리에 '수레넘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한자로 '차남(車南)'으로 표기하고 있다. 수레는 '차(車)'로 뜻을 표기하고, 넘이는 '남(南)'으로 음만 표기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 외천리의 수레너미(수레넘이) 마을은 '차현(車峴)'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넘이'가 고개의 의미임을 알고 의역을 한 것이다.

그러면 지명에 나타나는 수레의 의미는 정말로 '수레(車)'일까?

보은군 보은읍 누청리의 수리넘골, 충주시 산척면 송강리 수리골(수레골), 영동군 심천면 장동리 의 수리실(수레실,車谷) 등에서 '수레'와 '수리'가 혼용되고 있는 것을 볼 때 '수레'는 '수리'에서 온 말임을 알 수가 있으며 산과 고개를 가리키는 지명으로 충북 지역에만 보더라도 '수리'가 붙는 지명이 다음과 같이 많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청주시 오송읍 호계리의 수리봉산을 비롯하여 단양군의 대강면 두음리 수리봉, 방곡리 수리봉, 가곡면 가대리 수리봉, 보은군의 회인면 건천리 수리티재, 내북면 대안리 수리티고개, 속리산면 삼가리 수리봉산, 수한면 차정리 수리티재 등이 있다.

수레의 고어가 '술위'이므로 음이 '수리'와 유사하여 이러한 혼란이 초래된 것이며 더욱이 '수레넘이'처럼 고개를 가리키는 말이 되고 보니 짐을 싣고 고개를 넘는 수레와 연관 지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음성군 삼성면 대사리의 수리티 고개는 원래의 이름이 '이티(吏峙)'이며 음성읍 평곡리의 수정산을 수리봉이라고도 부르는 것으로 보아 '수리'라는 말이 산이나, 고개에서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 명사로 쓰이다가 그 의미를 상실하면서 고유명사로 된 것으로 짐작할 수가 있다. 이러한 혼란은 음성군 생극면의 '수레의 산'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현재는 수리산과 수레의산이 구분되어 있지만 그 명칭이 '수레산, 수리산(愁離山), 수레내산, 차산(車山), 차의산(車依山)' 등으로도 다양하게 불리고 있다. 그러나 그 뿌리는 모두 '수리산'에서 온 것이고, 또한 수리산이라는 이름이 어느 산을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높은 산을 모두 가리키는 일반명사로 쓰여왔음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수리산 주변의 지명들이 수리산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도 볼 수가 있다. 생극면 병암리 수리넘이 고개는 안곤재에서 만담리로 가는 수리산 줄기를 넘는 고개를 가리키며, 생극면 신양리에는 '수리내(응천)'라는 천이 있고, '수리울'이라는 마을이 있으며 '수리울'로 넘어가는 고개를 '큰고개' 또는 '수리치고개'라고 한다. 수리산과 행덕산 사이에는 술고개가 있는데 원말은 '수리고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수리울 남쪽, 수리산 서쪽 중턱에 있는 못은 '수리산 못'이라 불리는데 권근선생의 묘와 관련하여 "권근의 묘를 이곳에 쓸 때 물이 솟아나 걱정을 하던 중 마침 이곳을 지나던 스님의 가르침으로 이곳에 못을 파니 물이 나지 않아 무사히 장사를 치렀다"는 전설이 있어 전설의 못으로 불리고 있다.

수리산 아래에 있는 마을은 수리울, 수레울이라 부르다가 차곡리(車谷里)로 표기하고, 수리산 밑의 들판은 수레들이라 부르고 차평리(車坪里)가 되었으며 수리산에서 발원한 물길이 차평리에서는 차평천, 신양리에 흐르는 수리내(鷹川)인데 이 둘이 합류하여 한강 수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수리'란 무슨 의미일까? '수리'란 말은 어원적으로 '고(高), 상(上)'을 의미하는 고어(古語)이다. 그러므로 단오의 다른 이름인 수릿날은 '상일(上日)' '높은 날', '최고의 날'의 뜻이 되며 '수리산'이란 '높은 산'의 의미인 것이다. 보통명사인 수리산(높은 산)이 널리 쓰이다가 '수리'의 의미를 잃게 되자 '수리'가 '수레', '술', '시루'로 해석하여 한자 '車', '酒', '舟', '甑'로 표기되면서 여러 지명을 만들어 내었고 여러 봉우리를 구분하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예를 들면 '수리'를 '독수리'로 해석하여 '응천(鷹川-음성 생극 신양)'으로, '수레'의 의미로 보아 '차(車)'로 표기한 곳도 많이 보이며, '수리내'를 '술내'로 보아 '주천(酒川-음성 소여, 周川-강원도 영월, 전남 남원)', '시루(甑)'로 보아 '시루봉'(경남 창원, 괴산 연풍)으로 표기한 곳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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