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파트 한편에는 오래 묵은 살림살이들이 쌓여있다. 누가 이사 갔는지 가구를 비롯해 낡은 전자제품들이 쌓여있는데 한지로 만든 등을 비롯해 손길이 많이 갔을 법한 소품들도 보였다. 그중에 싸리나무 채반이 하나 있어 눈길을 끌었다. 그 채반은 기성품이 아니라 손으로 만든 것이라 더욱 눈에 익었다.
내게도 싸리나무로 만든 작은 소쿠리가 있다. 외할머니께서 손수 만드셨는데 생전에 내가 결혼하면 반짇고리로 주라고 엄마에게 맡겨두셨다고 한다. 야트막한 높이에 뚜껑이 갖춰진 아담하고 화려한 반짇고리다. 노랑,빨강,연두,파랑색 실이 싸리나무를 촘촘히 엮어 무지개 같은 층을 만들고 중간에 마름모꼴 무늬들을 규칙적으로 배열하였다. 뚜껑 무늬는 더욱 정교하다. 중심으로부터 밖을 향하여 마름모꼴 무늬들이 별처럼 펼쳐져 있다. 색과 색의 경계에 자리한 무늬에는 경계를 가운데로 하여 원을 그리는 색과 보색이 되는 실로 엮어 나침반처럼 생긴 무늬들이 밖을 향해 빛처럼 퍼져간다.
가끔 반짇고리가 완성되기까지 지나간 할머니의 시간을 생각한다. 낭창거리는 햇싸리나무 가지를 베어다 삶고 껍질을 벗기며 여기저기 손을 긁히기도 했을 텐데. 물에 담가둔 싸리나무가 뽀얘지기를 기다리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조금 더 굵은 가지로는 채반도 만드셨는데 친정어머니는 그 채반에 가지나 애호박 같은 나물을 말리곤 했다. 어머니가 쓰던 채반들은 긴 세월 삶과 부대끼며 낡아 풀어지고 모양이 흐트러져 사라지고 없다. 외할머니 솜씨가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이 내 반짇고리다.
어린 날 정읍 외가에 가면 할머니는 늘 내 손을 잡고 마을 어른들을 일일이 방문하며 인사를 드리게 했다. 일 년에 서너 번 보는 사이니 어렵고 불편한 자리였는데 할머니의 마디 굵은 손가락이 내 손가락 마디사이로 따뜻하게 꿰어 들어오면 마음이 편안하고 든든했다. 싸리나무와 실들이 촘촘하게 엮이듯 할머니의 마음이 스며들어 여린 내 마음과 그러매지는 느낌이 참 좋았다. 여름이면 당신 무릎을 베고 누운 손녀의 등을 향해 가만가만 부채질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시던 목소리, 모깃불 냄새, 싸리나무 낭창거리는 소리가 걸어나와 여전히 그립다. 그럴 때 반짇고리를 꺼내 보면 할머니의 손에서 느껴지던 그 따뜻함이 손깍지 끼던 그 순간처럼 나를 안아준다.
사실 현대화된 가구들 속에서 반짇고리가 자리할 공간은 마땅치 않다. 먼지때문이기도 하지만 나 역시 미니멀을 추구하다 보니 물건이 밖에 나와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머니 세대처럼 바느질을 자주 할 일도 별로 없다 보니 여러 바느질 도구들이 필요하지도 않다. 내 반짇고리도 사실은 용도를 잃어버린 채 액세서리나 가벼운 일상용품들을 넣어두고 있다. 그럼에도 반짇고리는 할머니의 마음이기에 내게 소중하고 또 귀하다.
이따금 정성스런 손맛이 들어간 소품들이 버려지는 풍경을 보면 나도 모르게 물건에 담긴 마음을 상상하며 안타까워하게 된다. 손과 손이 만나 얽히고 때론 그러쥐고 때론 흘려보낸 마음들을. 한때는 손깍지 끼듯 그리 안고 살던 마음이었으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