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21대 대통령 선거일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한다. 민주주의는 시민이 주인인 정치를 의미하고, 선거는 시민이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는 대표적 방법이다. 고대 아테네는 시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직접 민주정치였다. 아테네는 정치적 의사결정에 시민이 직접 참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선거가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국가의 규모가 커지면서 시민이 주인인 민주정치를 하고는 있지만 시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할 수 없기에 진정한 의미의 민주정치라고는 할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를 간접 민주정치라고 하고 주인인 시민은 선거를 통해 대리인을 뽑고 대리인이 시민을 대신해 정치적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금(現今)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는 주인으로서의 권리 행사인 만큼, 모두가 투표를 통해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길 기대해 본다.
사실 고대철학자인 플라톤은 대표적인 반민주주의자이다. 그는 자신의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잘못된 민주정치에 의해 사형을 당하자 민주정치는 바람직한 정치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플라톤이 반민주주의자가 된 것은 어쩌면 민주정치가 중우정치(衆愚政治)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민주정치는 이상적인 정치형태는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민주정치를 신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민주정치는 군주가 주인이거나 귀족이 주인이 아니라 바로 시민이 주인인 정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민이 주인인 정치는 무조건 좋은 것인가. 그렇지 않다. 플라톤의 주장대로 만약 중우정치로 전락한다면 이는 다른 정치형태보다 못할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민주정치가 중우정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바로 시민이 '중우'가 아닌 '합리적 시민'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 합리적 시민은 어떤 사람이고 또 어떻게 해야 합리적 시민이 되는가? 합리적 시민은 그냥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합리적 시민은 대화와 토론 능력을 지닌 존재이고, 교육을 통해 길러져야 되는 존재이다. 이렇게 말하면 혹자는 "대화와 토론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아니야."라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만약 합리적 시민이 이들의 주장처럼 누구나 저절로 될 수 있는 존재라면, 민주정치는 중우정치로 전락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정치 현실은 어떠한가? 합리적 시민들의 정치라고 할 수 있는가. 우리 사회는 지금 거의 '문화적 내전'이라고 할 만큼 정치적 세계관과 가치관이 충돌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로 견해가 다르면 단순한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해 극단적 혐오를 나타내고, 심지어는 상대를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보거나 공격적 폭력성도 서슴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런 정치 현실을 보면서 정치교육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고등학교에서 정치교육은 금지되어 있다. 교사는 법적으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현재 고등학교 3학년의 경우 생일이 지나면 투표할 수 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정치 행위를 해야 하는데, 학교에서는 정치교육이 금지되어 있으니, 이들이 어떻게 합리적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겠는가? 이제 우리의 교육도 달라질 때가 되었다. 그렇다고 정치교육이라는 미명 하에 교사는 아이들에게 어떤 정치적 이념을 주입해서는 안 된다. 그런 위험성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학교에서 정치교육을 하려면 설령 교사에게 정치활동이 보장되어 있다 하더라도 정치교육을 할 때는 정치적으로 중립적 위치이어야 한다.
독일의 경우는 '보이텔스바흐 합의'하에 정치교육을 한다. 보이텔스바흐 합의는 세 가지 원칙을 강조한다. 첫째는 강압 금지이다. 교사는 어떤 수단을 통해서든 학생들에게 특정한 견해를 주입하고 그럼으로써 그들이 독립적인 의견을 형성하지 못하도록 방해해서는 안 된다. 둘째는 논쟁성에 대한 요청이다. 교사는 학문과 정치에서 논쟁적인 것은 수업에서도 논쟁적으로 드러나야 한다. 셋째는 이해관계 인지이다. 교사는 학생들이 특정한 정치적 상황과 자신의 이해관계 상태를 분석할 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해관계에 비추어 정치 상황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독일은 이처럼 보이텔스바흐 합의에 의거 정치교육을 함으로써 심각한 이념 대립을 극복하고 전 국가적 차원에서 체계적인 정치교육시스템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따라서 우리도 조심스럽게 정치교육의 필요성을 제안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