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일보] 중학교 다닐 때, 존경하는 여성을 적어보라는 문항에 육영수여사라고 써서 반 아이들의 놀림을 받은 일이 기억납니다.
정확하게 왜 그렇게 썼는지 모릅니다만 조용한 외모에 어머니 같은 따뜻한 미소를 가진 분으로 또 충북출신이란 점에서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당시 여학생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으면 대부분 '현모양처'라고 대답했다는 기사가 생각납니다. 그러니까 대부분 가정은 남편이 밖에 나가 돈 벌어 가족부양하고, 아내는 아이들을 낳고 길으며 남편 내조하는 모습을 이상형으로 보았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육체적 힘이 중시되는 농업사회 모습일 것입니다. 이런 사회가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기계가 육체적 힘을 대신하고, 전기와 같은 문명의 발달로 힘이 약했던 여성들도 경제일선에 등장하게 되면서 가부장적 사회는 맞벌이 가정으로 변화되었습니다.
21세기 들어 이젠 일에 관하여 남녀차별을 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제가 청주시장 재직시 신규 직원들은 여초(女超)현상이 심하게 나타나 남자직원의 부족으로 어려운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행사 시 무거운 물건을 나르는 일 등도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야간 숙직 같은 일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때 밤을 지새우는 숙직은 남자직원으로, 휴일 낮 당직은 여자직원으로 안배하였는데 여초현상으로 남자직원은 숙직을 자주 하여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해결을 위하여 여성들 의견을 물었더니, 예상을 깨고 여성들이 숙직하겠다는 다수의견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여성들도 숙직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저는 문득 대통령부인도 직업을 갖고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2021년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조 바이든의 부인인 질 바이든은 미국 역사상 최초로 직업을 가진 대통령 배우자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델라웨어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뒤 고교교사로 일해 오다 바이든과 결혼하였고, 2007년 교육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노던커뮤니티칼리지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습니다. 바이든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교수와 퍼스트레이디라는 투잡을 해오다가 지난 2024년 교단을 떠났습니다. 물론 출강하면서도 퍼스트레이디로서 적극적인 활동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었지만 자기 직업을 가진 열렬 여성이었습니다.
또 한 분 소개할 분은 프랑스의 미테랑대통령부인 다니엘 미테랑입니다.
어떤 면에서 가장 이상적인 대통령부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녀는 미테랑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동지였지만 가장 가혹한 비판자이기도 했습니다.
나치에 협력한 비시정부의 유태인학생들을 신고하라는 정책에 반대하여 교장직을 내놓은 아버지와 교사출신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그녀는 레지스탕스에 가담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운명적으로 당시 조직 담당자 미테랑을 도피시키는 임무를 맡고, 위장연인으로 행세하다 결국 진짜부부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1981년 남편의 대통령 당선으로 엘리제궁으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 자기는 궁의 바비인형이 되기 싫다고 거절하면서 퍼스트레이디로서 일하기 위한 작은 사무실만 요구하고, 파리교외의 개인 사저에서 출퇴근을 하였습니다.
물론 미테랑대통령과 같은 동지적 입장에서 퍼스트레이디 역할은 하지만 인권, 특히 이민자권익이나 사회활동에 있어 많은 부분 대통령의 무서운 비판자였습니다. 그녀는 미테랑대통령 사후에도 국제인권을 위하여 다니엘 미테랑 재단을 설립, 활발한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녀의 말입니다. "나도 헌법에 대통령부인에 대한 규정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나는 자유롭습니다. 나의 도덕적 양심만이 나를 인도하고, 내가 개입해야 할지 여부를 결정합니다. 내 도움이 필요하다는 확신, 그것이 나를 움직이게 합니다."
찬반이 있겠지만 우리도 이런 대통령과 맞벌이 일을 하는 영부인을 맞았으면 하는 기대를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