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

2025.05.29 17:20:49

이두희

충북소방본부 119종합상황실 소방위

사건 사고와 관련된 재난 현장에서 18년 동안 근무하면서 지인이나 가족에게 '죽고 싶다'라는 신호를 보내고 자취를 감춰 119에 신고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2024년 기준으로 1년 동안 필자가 근무하는 충북소방본부 119종합상황실에 자살과 관련해 신고되는 접수 건수만 2천500여 건이다.

도움의 손길을 재빠르게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자살이라는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안타까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현장을 많이 봐 왔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남겨진 가족들의 슬픔을 옆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한순간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남겨진 가족들은 '지키지 못했다'라는 죄책감과 함께 엄청난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현장에서 지켜보는 소방대원도 남겨진 가족의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체념한 목소리의 여성 신고자의 전화를 듣고 출동 지령 후 위치를 추적해 소중한 생명을 구한 기억이 남아 있다. 필자는 여느 때처럼 상황실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지난 2월 중순 저녁 무렵 힘없는 목소리로 '와 주실 수 있어요?'라는 전화를 받았다.

일단 휴대전화 기지국 위치가 잡혔는데 '극단적 선택 시도를 많이 하는 장소'로 필자가 사전에 인지하고 있어서 먼저 출동 지령을 내보내고 신고자의 위치 등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러나 당시 신고자가 전화 연결이 안 되는 무응답 상황이었다. 이에 필자는 휴대전화 GPS 값을 확보하고, 신고자의 위치를 알기 위해 전화 시도를 계속했다.

이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출동대는 현장 수색 끝에 현장에 쓰러져 있는 신고자를 발견했고, 출동대와 구급 상황관리팀에서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을 파악하고 정신건강복지센터로의 연계 조치까지 나서 사후 관리에 힘쓰며 소중한 생명을 지킬 수 있었다.

자칫 단순 오인 신고로 여길 법한 신고 전화를 넘기지 않았고, 극단적 선택을 많이 하는 장소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게 주요했던 걸로 기억한다.

지난 2014년 보건복지부 발표 자료에 따르면 자살 시도자 중 1년 이내에 다시 자살을 시도하는 비율은 16%나 되고, 1년 이후 다시 자살을 시도하는 비율은 약 70%에 이른다고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다양한 이유로 힘든 상황에 부닥친 사람들이 가족과 지인에게 '죽고 싶다'란 신호를 보내고 있다.

자살 예방 상담 전화 109번은 2024년부터 기존의 자살 예방 상담 전화번호인 1393, 정신건강 상담 전화 1577-0199, 청소년 상담 전화 1388을 통합한 전화번호이며 24시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은 119에 도움을 많이 요청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죽고 싶다'라고 알린다는 것은 어쩌면 간절하게 살고 싶다는 신호이다.

우리 주변에서 위험신호를 보내는 사람이 있는지 따뜻한 관심을 가지고 도움의 손길을 줘야 하겠다.

자살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자살은 개인의 삶을 파괴하고 가정의 평안을 위협하며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정신적 물질적으로 악영향을 미치는 등 우리 사회에 막대한 사회·경제적 손실을 초래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회 구성원의 안전을 위해 충북119종합상황실에서는 안전한 사회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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