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샵스타그램 - 청주 사직동 카페 '해호미'

#해와바다 #고향친구 #카페 #커뮤니티 #작당모의소

2024.12.17 11:11:45

ⓒ해호미 충북일보 지면
[충북일보] 2층 계단을 올라 문을 열고 들어선 손님이 좋아하는 메뉴를 주문한 뒤 익숙한 듯 자리에 앉는다. 메뉴를 고르는 순간의 망설임조차 없다. 긴 창문 너머로 오랜 세월 건너편 길가를 지키고 있는 플라타너스가 눈을 맞춘다. 가방에서 문구류와 노트북 등을 꺼내 자신만의 작업에 몰두하는 순간까지 물 흐르듯 자연스레 이어지는 해호미의 시간이다.

짙은 나무색 탁자와 의자, 공간 일부를 채우고 있는 책들이 분위기를 만든다. 도서관 같기도 하고 서점 같기도 한 정적인 순간에 적당한 음악이 섞여 흐른다. 가져온 책을 보거나 다이어리를 정리하는 이들 사이 유쾌한 대화를 나누는 이들도 있다. 탁자마다 자연스레 놓인 몇 권의 책은 딱히 책 생각이 없던 손님들도 책장을 넘기게 하는 장치다.
책과 어울리는 해호미의 분위기에 관심이 생긴 손님들은 자연히 카페 한편의 책더미로 걸음을 옮긴다. 벽면의 책장과 가운데 놓인 책상을 가득 채운 여러 책은 일반 서점에서 만나보기 어려운 책이 대부분이다. 해호미 안에 마련된 5평 남짓의 독립 서점이다.

책을 소중히 만져달라는 당부와 함께 책 표지에 붙은 한 장의 글이 빼곡하다. 책을 먼저 읽어보고 가져온 이흥기, 고은별 대표의 친절한 소개 글이다. 제주도 여행 중 만나 친구가 된 두 사람은 해와 바다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으로 바다가 없는 충북에 해호미를 꾸렸다. 여행 중 여러 지역에서 들러본 독립 서점을 좋아하는 것도 같았다. 이곳에 큐레이션 된 책들은 책 속의 인상 깊은 구절을 적어 두거나 개인적인 감상평을 곁들였다. 대형 서점에서는 볼 수 없는 날 것의 글맛이 좋아 해호미 독립 서점에 들인 책들이다.
ⓒ해호미 인스타그램
지난해 여름부터 무심천 인근에 자리 잡은 해호미는 할 말이 많은 공간이다. 완밤팥치즈케이크, 흑임자율무절미치즈케이크 등 디저트의 죄책감(?)을 조금은 덜어줄 글루텐프리 메뉴를 포함해 당근컵케이크, 유자콩파운드 등 맛있는 디저트와 커피를 만날 수 있는 카페를 기본 형식으로 삼았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보통의 카페와 다르다.

해호미 작당모의소라고 이름 붙은 한편의 공간도 그렇다. 비정기적 커뮤니티가 자주 활성화되는 이곳은 모이는 사람에 따라 의도가 다른 장소로 쓰인다. 대표들의 작업실로 쓰이기도 하지만 때에 따라 종이비행기를 접는 제작소가 되기도 하고 토론이 이어지기도 한다. 책을 좋아하는 대표들의 취향에 맞춰 최근에는 뜻이 맞는 손님들을 모아 직접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나만의 책을 내고 싶은 이들이 공통분모를 찾아 각자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편집디자인과 교열 등은 이흥기 대표가 맡았다. 성공적인 출간 후 2기 작가들도 순식간에 모였다.
해호미(HAEHOMIE)라고 쓰인 창문 앞 널찍한 평상은 때때로 열리는 작은 콘서트의 무대로도 쓰인다. 관객을 미리 모아 지역 음악가들의 공연을 선보인 지난여름 재즈 콘서트는 높은 만족도를 기반으로 겨울 재즈 콘서트 무대도 마련했다.

화요일 휴무를 제외하면 오전 11시부터 오후 9시까지 운영되는 해호미의 시간이 수요일은 다르게 흐른다. 오후 8시 카페 문을 닫으면 '해독'의 시간이다. 2시간을 예약한 이들이 같은 공간에서 다른 시간을 보낸다. 해호미 독서 활동으로 이름 붙인 이 모임에서는 누군가와 대화하거나 토론하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기기에서 벗어난 나만의 해독 시간을 갖는 것이 목적이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사람들 외에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할 시간을 가지는 것만으로 이 시간의 단골이 되기도 한다.
해호미 작당모의소에서 만들어지는 각종 프로그램은 '굳이'에서 시작된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도 해보지 않으면 모를 즐거움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하찮은 행복의 힘을 느껴본 손님들이 해호미와 함께 갈 친구로 바뀌어 간다.

/김희란 기자 ngel_r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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