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일보]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의 모럴해저드가 점입가경이다. '아빠 찬스 채용'과 '소쿠리 투표'에 이어 이번에는 금품수수다. 선관위의 도덕적 해이와 무관치 않다. 조직의 기강조차 바로 세우지 못한 국가 헌법기관의 추락이다. 감사원 보고서 내용은 충격 그 자체다. 감사원은 지난 10일 전국 시·군·구 선거관리위원회 직원 128명이 청탁금지법을 위반해 금품을 받거나 해외여행 경비를 지원받았다고 밝혔다. 전국의 시·군·구 선관위 직원 1천950명 가운데 6.6%에 해당한다. 감사원은 노정희·노태악 대법관 등 전·현직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의 경우 매달 200여만 원의 위법한 수당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선관위는 그동안 60년 역사의 헌법기관임을 내세워 감사다운 감시를 받지 않았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선관위는 선거에서 후보들의 식사 한 끼 제공이나 경력 한 줄까지 철저하게 감시한다. 그런데 정작 본인들에겐 한없이 관대했다. 가장 공정해야 할 선관위에 만연한 도덕적 해이의 단면이다. 이렇게 악취가 진동하는 국가기관이 또 있을까 무섭다. 선관위는 지난 5월 이미 21명의 친인척 특혜채용 복마전으로 국민들의 지탄을 받았다. 충북도 선관위 채용면접 과정에서도 의혹이 불거졌다. 결국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충북 선관위에 대한 특별감사를 벌였다. 이번에는 100명이 넘는 일선 선관위 직원들이 대거 금품을 불법 수수했다. 남의 돈으로 공짜 해외여행까지 갔다 왔다. 기가 차고 코가 막힐 일이다. 이 정도면 비리백화점이다.
누군가가 별 다른 이유 없이 돈을 줄 땐 다른 속뜻이 있다. 정치에 뜻이 있는 선관위원이 돈을 줄 땐 이유가 뻔하다. 나중에 자신들이 출마할 때를 대비해 잘 봐 달라는 의미다. 게다가 선관위원들은 업무와 관계있는 사람들이다. 이들로부터 금품을 제공받았다면 명백한 청탁금지법 위반이다. 그런데도 중앙선관위가 '선관위원이 직원에게 금품을 제공해도 된다'는 식의 내부 공지를 여러 차례 올렸다고 한다. 선관위 스스로 청탁금지법 위반을 조장한 셈이다. 아연실색할 일이다. 중앙선관위는 특혜채용 비리가 터졌을 때도 "법과 원칙에 따른 채용"이라며 발뺌했다. 외부에서 볼 때 명백한 부패이고 비리인데 무슨 문제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한 듯한 태도였다. 그만큼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필연적으로 부패한다. 선관위는 지난 60년간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이유로 외부의 견제를 거부했다. 그들만의 카르텔을 공고히 했다. 그 사이 도덕적으로 급속히 파산했다. 자정 능력도 상실했다. 선관위를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선관위는 극히 엄격한 선거법을 집행하는 기관이다. 선관위 직원이 비위를 저질렀다면 더 엄하게 일벌백계하는 게 공정이다.
유권자들은 선거 출마 예정자로부터 밥 한 끼만 잘못 얻어먹어도 처벌받는다. 선관위에 의해 고발돼 밥값의 최대 50배에 달하는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공직에 선출된 사람은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만 선고받아도 직을 상실한다. 게다가 5년간 선거에 입후보할 수 없다. 선거사무소를 방문하는 사람에게 통닭이나 짜장면을 대접해도 식사 제공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선거사무 관계자 외에 자원봉사자 등에게는 어떤 격려금이나 회식비, 교통비, 선물도 제공할 수 없다. 이렇게 엄한 법을 다루는 선관위가 스스로에겐 너무 너그러웠다. 선관위를 지금처럼 견제 받지 않는 헌법기관으로 놔둘지도 고민해야 한다. 이 대로라면 자녀 특혜 채용과 같은 내부 조직의 부패를 막을 길이 없다. 정치적 편향성에 대해서도 제재할 방법이 달리 없다. 부정선거 방지를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 되레 편향 선거를 조장할 수도 있다. 정말로 모순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선관위가 신의 직장이 돼선 안 된다고 판단한다. 다른 공무원들은 가벼운 실수를 해도 중징계를 받곤 한다. 선관위 직원들이 큰 실수를 했는데도 경징계라면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 선관위는 국민 참정권 행사를 공정하게 다뤄야 하는 기관이다. 기본적으로 공정이 본질이다.
선관위 직원이 잘못을 저질렀다면 더욱 엄한 처벌을 받아야한다. 그게 마땅하고, 그게 공정이고 정의다. 무신불립(無信不立),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 선관위의 존재도 마찬가지다.
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
<저작권자 충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