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72주년 - "참전 사실 증명하라니 이게 국가냐"

청주 정상구씨, 대통령실에 탄원
부친 故정용규씨 명예회복 나서
국방부 공비토벌기록 無" 근거
국가보훈처 참전유공자 인정 거부
정상구씨 빛바랜 사진·증언 제시

2022.06.23 22:01:48

충북 보은군 보은읍 학림리에 건립된 국민방위군·의용경찰 전적기념탑.

ⓒ이종억기자
[충북일보] "아버지는 6·25한국전쟁 때 충북 보은에서 국민방위군으로 참전했는데도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청주에서 개인택시 사업을 하고 있는 정상구(68)씨는 지난 21일 윤석열 대통령실로 보낸 탄원서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정씨에 따르면 부친 고(故) 정용규(鄭容奎·1933~1997)씨는 6·25전쟁 때인 1950년 가을부터 1951년 말까지 비정규군인 국민방위군으로 보은군 산외면 장갑리와 대원리 일대 공비토벌 작전에 참여했다.

정씨는 2018년 1월 부친의 명예회복을 위해 모친 라정순(88)씨 명의로 국가보훈처에 아버지의 6·25전쟁 참전 유공자등록을 신청했다. 소대장으로 공비토벌 작전에 함께 참여했던 이모(95·보은군 산외면 장갑리)씨와 소대원 김모(91)씨의 증언도 곁들였다.

故 정용규(원안)씨가 6·25한국전쟁 때 비정규군인 국민방위군으로 보은군 산외면 장갑리와 대원리 일대 공비토벌 작전에 참여하면서 동료들과 찍었다는 흑백사진.

ⓒ정상구 씨
증거자료로 2007년 보은군 산외면 입구에 건립된 '국민방위군·의용경찰 전적기념탑' 사진과 참전 당시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 부친의 빛바랜 사진도 제출했다.

이 전적기념탑에는 6·25전쟁 당시 국민방위군과 의용경찰로 참전해 조국을 수호한 보은지역 청년 1천64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정씨의 부친 이름도 선명하게 적혀 있다.

정씨는 "소총을 들고 동료들과 같이 찍은 아버지의 빛바랜 사진은 동료 후손들로부터 입수했다"며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국민방위군으로 참전했던 옛 동료들과 함께 계모임을 했다"고 기억했다.

당시 소대장이었던 이씨는 "1950년 3월 한 달간 국민방위군 사관학교를 수료하고 소위로 임관해 1950년 가을부터 1951년 말까지 보은군 산외면 장갑리와 대원리 일대에서 공비토벌 작전을 수행했다"며 "소대원이었던 정씨와 대원리 쪽에 돌로 초대를 쌓은 뒤 함께 공비를 토벌한 기억이 있다"고 증언했다.

이씨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가보훈처로부터 6·25전쟁 참전 유공자증(보훈번호 1-2501667)을 발급받았다.

이씨의 증언을 직접 청취한 충북경찰청도 "정씨는 의용경찰 소속이 아닌 국방부 소속 국민방위군으로 공비토벌 작전에 참전한 사실이 인정된다"는 의견서를 충북남부보훈지청에 보냈다.

충북남부보훈지청은 "정씨가 의용경찰이 아니고 국민방위군으로 참전했다"는 충북경찰청의 의견에 따라 국방부에 정씨의 6·25전쟁 참전사실 확인을 요청했다.

그러나 국방부의 심의결과는 달랐다. 국방부는 "국민방위군의 경우 1950년 12월 국민방위군설치법에 따라 창설된 뒤 1951년 5월 이 법률이 폐지되면서 해체됐다"며 "이 기간 국민방위군은 제2국민병 후송과 교육을 수행했을 뿐 공비토벌 작전에 운용된 적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경찰청 조사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생전 정용규(오른쪽 두번째)씨 가족사진.

ⓒ정상구 씨
국방부는 또 "1950년 7월 공비의 활동이 빈번했던 지리산 등 일부지역에서 군 통제아래 공비토벌이 이뤄졌으나 다른 지역에서는 경찰통제에 따라 공비토벌 작전이 펼쳐졌다"며 "1950~1951년 충북 보은지역에서 군 통제에 따라 공비토벌 작전이 수행된 기록을 확인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충북남부보훈지청은 국방부의 이 같은 심의결과를 바탕으로 2018년 4월 26일 정씨의 참전유공자 등록을 거부했다.

정씨 유가족은 두 달 뒤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충북남부보훈지청장을 상대로 참전유공자 등록거부처분 취소를 청구했으나 같은 해 8월 24일 기각 당했다.

중앙행정심판위는 "국민방위군으로 참전유공자가 되기 위해서는 국방부장관의 확인이 있어야 한다"며 "하지만 국방부는 국민방위군이 1950~1951년 군 통제아래 보은에서 공비토벌 작전을 벌인 적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국민방위군·의용경찰 전적기념탑에 적힌 '산외면국민방위군 정용규(山外面國民防衛軍 鄭容奎)'라는 글자가 고인을 특정 하는 것이라는 객관적·구체적 증거가 없다"며 "증인의 진술도 구체적이지 않은데다 단순히 고인과 1951년까지 국방부 국민방위군 소속으로 공비를 토벌했다는 진술만으로 고인을 참전유공자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정씨는 "보은 전적기념탑'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10년 후에 건립됐다. 기념탑건립추진위원회에서 공비토벌 사실도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탑을 세웠을 리가 없다"며 "국방부와 국가보훈처에서 내린 참전유공자 등록거부 결정은 잘못됐다"고 반박했다.

이어 "국방부에서 현장조사를 통해 사실 확인을 다시 해주기를 바란다"며 "당시 찍은 사진과 동료의 증언, 전적기념비 같은 명백한 증거가 또 어디 있겠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정씨는 "국민방위군들은 나라를 위해 싸웠지만 인정도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유족한테 6·25전쟁 참전 사실을 증명하라니 이게 국가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씨는 "현재 90세를 넘긴 국민방위군들은 상당수가 숨졌거나 생존해 있다하더라도 건강이 좋지 않아 증언할 기력도 떨어지고 있다"며 "대통령실에서 관심을 갖고 하루라도 빨리 국민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국민방위군은 1950년 6·25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불리해지자 정부가 급하게 조직한 만17~40세 사이의 군번 없는 장정들이다. 대략 60만 명 이상이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전쟁터에 투입됐다. 기록도 부실하다. '비정규군'이어서 실태조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진실화해위원회가 2010년 국가유공자로 예우하라고 정부에 권고했을 뿐이다.

/ 임영은기자 dud796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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