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엄청난 반전이 없는 한 부(富)와 가난, 모두가 고스란히 대물림 되는 게 요즘 사회다.
기껏해야 230여만원의 보증금, 월 임대료 4만8천여원을 내고 11평~13평짜리 '개미집'에 사는 청주 산남주공2단지 영구임대아파트. 4만원대 임대료를 두 달 이상 밀려봤다는 입주민이 절반에 달할 정도의 극빈곤 밀집지역.
이곳에서 용 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오히려 1991년 건립 후 23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가난은 2대를 넘어 3대까지 대물림되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올해 초 청주복지재단과 산남종합사회복지관 조사에서 산남주공2단지의 2대(代) 이상 주거 비율은 24.1%로 집계됐다. 한부모 가정이나 조손 가정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의 58.3%는 직업이 없었다. '일자리가 있으면 일을 하겠다'는 응답자가 66.7%나 됐으나 실제 직업훈련을 받은 보호자는 12.5%에 불과했다.
자녀의 교육비를 벌고 싶어도 질병과 낮은 학력 탓에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가난 1세대'가 많았다. 그들의 평균 학력은 '초졸 이하' 47.5%, '고졸 이하' 23.5%, '중졸 이하' 14%로 파악됐다.
벗어나려해도 벗어날 수 없는 경제적 빈곤은 고스란히 자녀들에게 대물림되고 있다.
대부분 입주민들의 월 평균 자녀 사교육비 지출액은 '5만원' 미만이다. 학원 교습은커녕 '공교육비를 한 달 이상 주지 못한 적이 있다'는 보호자도 15.7%에 달한다. '무상교육'이라는 국가 교육가치가 적어도 이 지역에선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단 얘기다.
지역 복지계는 산남주공2단지 학생들의 보금자리인 '한솔초등학교'의 역할 부재론을 큰 문제로 꼽고 있다.
도내 최대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세대 밀집지역인 수곡2동의 갖은 병폐를 해결하기 위해 몇 년 전 '건강한 마을 만들기 수호천사'라는 주민 네트워크가 발족됐으나 유독 학교 측, 특히 한솔초등학교의 참여율이 저조하다는 게 주민 네트워크 측의 아쉬움이다.
한 관계자는 "학교 폭력이나 저소득층 학생들의 왕따 현상 등 20여년 간 한솔초가 지닌 고질적 문제를 지역 복지계와 함께 해결해야 하는데 학교가 지나칠 정도로 폐쇄적이다"며 "한솔초는 교사들 사이에서도 근무기피 학교로 알려져 있는데, 젊고 활력 있는 교사를 대거 배치하는 교육청 측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했다.
최근 몇 년 간 청주지역 청소년 재판 피의자의 40% 이상이 이 지역 학생들이라는 법원 통계가 있다. 어려운 가정환경 탓도 있지만, 이를 극복하고 학생들의 기초 인성을 닦아줘야 할 초등교육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도내에서 가장 가난하고 열악한 학교로 낙인(烙印)된 '한솔초등학교'. 1992년 개교 후 올해까지 5천411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으나 아직까지 '총동문회'조차 결성하지 못하고 있다.
학교와 졸업생 모두가 '가난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싶은 건 아닐까. 졸업생조차 자랑스러운 모교로 기억하지 않는 한솔초에서 제2, 제3의 빈곤층 학생들이 힘겨운 연필을 잡고 있다.
/ 임장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