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 흥덕구 수곡2동 산남주공2단지 영구임대아파트의 시계는 1991년에 멈춰 있다. 경제·복지·문화, 어떤 면에서도 발전을 하지 못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세대 1천259가구와 차상위 계층 111가구가 몰려 있는 이곳에선 각종 사회적 병폐가 도출됐다. 극도의 가난으로 인한 정신적 피폐는 입주민들을 '자살'이란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았다.
아파트 건립 후 무려 100명 이상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음에도 지역사회는 이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원래 그런 곳이니 그러려니 했다. 정치권도 선거철에만 '반짝 관심'을 보일 뿐이었다.
지난 23년 간 특별한 저항조차 하지 않던 입주민들은 최근 '일탈'을 꿈꾸기 시작했다. 해당 지자체인 청주시와 정치권에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목소리를 냈다. 19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철저하게 소외된 난쟁이(도심 빈민층)가 쏘아올린 작은 공처럼.
입주민들의 요구 사항은 '공공보건시설' 설치다. 지난 여름 서명운동으로 주민들의 뜻을 모았는데 무려 1만152명이 동참했다. 복지 중에서도 질병 치료, 즉 생명과 직결된 보건 서비스가 절실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만큼 산남주공2단지의 건강 상태는 매우 좋지 않다. 최근 조사에서 입주민의 46.2%(고도우울 24.7%, 중간우울 21.5%)가 의료적 치료를 요할 정도의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알코올 남용 및 의존자와 언제든지 중독자로 발전할 수 있는 문제 음주자도 각각 30.4%, 21.1%나 됐다.
입주민들의 생활비 세부 지출내역을 보더라도 병원비는 식료품 구입비와 주택 및 주거비용에 이어 세 번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장기적 치료를 요하는 65세 이상 노인(전체 가구의 40.3%)과 장애인(40.7%)이 월등히 많은 까닭이다.
열악하기 짝이 없는 주거 환경을 고려하면 '공공보건시설' 설치 타당성은 충분히 있다. 지역보건법 상 시장은 지역주민의 보건의료를 위해 특히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필요한 지역에 (도시형)보건지소를 설치·운영할 수 있다는 법적 근거도 있다.
문제는 예산이다. 최소 30억원에서 많게는 50억원 이상이 필요하다. 2010년 용암1동 용암보건지소, 올해 11월(11일 예정) 비하동 강서보건지소를 잇따라 개소한 청주시는 예산난을 이유로 수곡2동 보건지소 건립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현재 사직1동에 위치한 흥덕보건소와 수곡2동 거리가 가깝다는 점도 악재다. 근접거리에 또 하나의 보건지소를 설치하면 특혜시비가 일 수 있다는 게 청주시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는 새 정부 방침과 맞지 않다. 박근혜 정부는 국민 '개개인 맞춤형' 행정서비스인 '정부3.0'을 국정과제로 추진 중이다. 3.0은 단순히 국가정보를 개방·공유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넓은 의미로 복지 분야에서도 개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추구한다.
산남주공2단지 영구임대아파트는 도내 최대 저소득층 밀집지역이다. 타 지역과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가난하고 병든 '특수지역'이다. 이런 곳에 공공보건시설을 포함한 맞춤형 보건복지타운을 건립하는 시책은 특혜가 아닌 '배려'이며, 진정한 의미의 '청주복지3.0'이다.
행정당국과 정치권이 예산 타령을 하며 고개를 젓고 있는 이 순간에도 산남주공2단지 입주민들은 고층 난간에 기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끝>
/ 임장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