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몰에 신상이 올라오는 속도는 이제 '주 단위'가 아닌 '일 단위'이다. 할인 알림은 하루에도 몇 번씩 스마트폰을 울리고, 우리는 무심코 장바구니를 채운다. 마치 옷이 한 시즌을 버티는 것이 아니라, 하루의 기분을 달래는 도구가 된 듯하다. 빠르게 바뀌는 트렌드, 빠르게 사라지는 옷, 과연 이 속도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패션의 빠름은 고스란히 지구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패션 산업은 더 이상 '스타일'의 문제로만 이야기할 수 없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10%,, 산업 폐수의 20%가 패션 산업에서 나온다. 옷 한 벌을 만드는 데 필요한 물은 무려 2,700리터, 이는 한 사람이 2년간 마실 수 있는 양이다. 이처럼 아름다움을 위해 너무 많은 것을 잃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패스트패션은 값싼 인건비를 찾아 개발도상국으로 공장을 이전하고, 그곳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하루 12시간을 일하기도 한다. 우리가 구매한 셔츠 한 장이, 누군가의 무거운 삶을 짓누르고 있는 현실, 이 모든 문제는 단 하나의 질문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왜 이렇게 자주, 이렇게 많이 옷을 사는 걸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 '슬로우 패션'이다. 슬로우 패션은 단지 '천천히 만든 옷'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속 가능한 소재, 윤리적인 생산 과정, 오래 입을 수 있는 디자인 등 전반적인 가치 체계를 바꾸는 철학적 접근이다. 슬로우 패션 브랜드들은 유기농 면, 재활용된 폴리에스터, 식물성 염로 등 환경에 해가 적은 원단을 사용한다. 옷을 대량 생산하지도 않고, 주문 생산이나 소량 제작을 통해 폐기물도 줄인다. 디자인은 과도하게 유행을 좇지 않고, 시간이 지나도 '나답게' 입을 수 있는 스타일을 지향한다. 그 어느 때보다 옷에 '가치'를 입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소비자, 즉 여러분들이 변화의 시작점이다. 이제 변화는 기업만의 몫은 아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브랜드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시장은 방향을 바꾼다. 우리가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슬로우 패션의 방법은 생각보다 매우 간단하다.
첫걸음은 덜 사고, 더 오래 입는다. 기존에 갖고 있는 옷은 수선하거나 리폼해본다. 각종 SNS나 도서, 웹사이트에는 옷을 리폼해서 입는 수많은 방법들을 아주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이 과정에 익숙해졌다면 다음 단계는 중고 의류나 친환경 브랜드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중고 플랫폼을 찾아보고 친환경 브랜드의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지속 가능성을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지 확인해본다. 실제로 유럽과 북미를 중심으로 중고 패션 플랫폼이 급성장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제로웨이스트', '비건 패션'에 대한 관심이 해마다 높아지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더 이상 '지속 가능성'은 일부 취향이 아닌, 대중의 새로운 기준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매일 아침, 옷을 고르며 하루를 시작한다. 옷장 속에도 철학이 필요한 때이다. 그 선택이 단지 스타일을 넘어, 지구를 위한 배려이자 누군가의 삶을 존중하는 행동이 된다면 얼마나 따듯할까· 단지 느린 유행을 따르자는 말이 아니다. 슬로우 패션은 유행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허겁지겁 달리는 대신, 내 속도대로 걸어가는 선택이다. 덜 다시만 더 애착을 갖고, 더 오래 입지만 더 나답게 스타일링한다. 그리고 삶을 둘러싼 것들과 더 깊게 연결되겠다는 태도이다. 한 벌의 옷을 오래 입음으로써 그 곳에 깃는 계절의 온기, 함꼐한 기억, 삶의 결을 입는다. 그렇게 옷장 속에도, 삶의 철학이 깃든다.
세상이 빨라질수록, 느린 옷이 가진 힘은 더욱 커진다. 패션의 미래는 이제 유행이 아니라 '가치'를 입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오늘 당신의 선택에서 시작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