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묘년, 그리고 패션 산업에서의 토끼들

2023.03.05 16:12:50

이한솔

프로덕트스토리지 대표

계묘년, 또끼의 해를 맞이해 옷을 만들다 남은 원단으로 하나하나 다림질을 하며 토끼 모양을 접어보았다. 그러면서 문득 토끼의 털이 패션산업에 어떻게 생산되고 있는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아마 '앙고라'라는 소재를 대다수 사람들이 입어본 적이 있거나 적어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부드럽고 따듯해서 겨울철에 목도리나 니트로 즐겨 사용되는 소재이다. 촉감이 부들부들하고 따듯하며 보기에도 예뻐서 겨울철에 정말 불티나게 팔린다. 보송보송한 눈송이같기도 해서 겨울철에 잘 어울린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잘 알고 있는 이 '앙고라 소재'는 대부분 어떻게 생산되어 우리 손에 오게 되었는지 모른다. '앙고라 소재'는 유독 털이 길고 보들한 앙고라토끼의 털에서 만들어진다. 하지만 이 앙고라, 즉 '토끼 모피'를 생산하는 과정은 사실 잔인하다. 앙고라 털을 수확하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가장 빈번하게 쓰이는 방법은 털을 '뽑는' 것인데 이때 토끼는 산 채로 고정되어 털을 잡아 뜯긴다. 이 방법은 길고 좋은 털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른 방법은 털을 '자르는' 방법인데 뽑는 방법보다는 덜 잔인해 보이지만 빨리 많은 털을 수확해야 하기 때문에 보호 장치 없이 귀를 잡고 가위로 털을 깎는다. 이 때 토끼가 상처를 입기도 한다. 그리고 세 달 뒤 다시 털이 자란 토끼는 이 과정을 반복한다. 한 동물보호단체에서는 중국의 앙고라토끼 농장에서 살아있는 토끼의 털을 무자비하게 잡아 뜯는 영상을 공개했다. 토끼는 소리를 잘 내지 않는 동물인데 이런 토끼들이 털을 쥐어뜯기면서 비명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이 영상이 공개된 후 몇몇 패션 업계들이 앙고라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모피는 인기상품이다. 토끼외에도 매년 밍크, 여우, 토끼, 친칠라, 너구리 등 1억 마리의 동물이 모피 농장에서 희생되고 있다. 모피를 만드는데 이용되는 동물들의 사육과정은 위 앙고라토끼와 마찬가지로 비윤리적이다. 대체로 좁은 우리에 최대한 많이 집어 넣은 상태로 방치되다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기도 한다. 모피 업계에선 동물복지를 위해 여러 가이드 라인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아직도 동물복지법이 허술한 나라에서 비윤리적으로 희생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들을 인식한 패션 기업들은 모피제품을 판매하지 않는 '퍼-프리(Fur-free)' 를 선언하기도 했다.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버버리, 구찌, 베르사체 등 동물들은 보호될 권리가 있다며 동물 가죽 및 모피를 사용하지 않는 퍼프리 정책을 선언했다. 세계적인 패션모델들은 촬영에서 동물 모피 입기를 거부하기도 하고 이외에도 많은 패션을 소비하는 소비자들도 이에 동참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어렸을 때 할머니 집에서 토끼를 키웠던 기억이 있는데 먹이를 주면 열심히 잘 받아서 먹는 친구였다. 새하얀 털에 귀여운 모습을한 토끼들이 마당에서 뛰는 모습만 보아도 기분이 좋아졌다. 이 친구와 닮은 토끼들이 패션 산업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요즘에는 토끼털을 쓰지 않아도 대체할 수 있는 소재들이 많아져서 비건 소재를 사용하는 데에 조금은 더 수월해졌다.

나의 작은 목소리와 작은 움직임이 동물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줄이고, 패션 산업에서 희생되는 동물들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될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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