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민화

2025.05.27 16:41:25

홍성란

수필가

그저 복을 바라는 그림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조선 민화 전시장을 들어설 때 제일 먼저 나를 맞이한 건 입신양명을 뜻하는 잉어나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꽃이 아닌 옛날 책장 그림이었다. 그런데 책만 있는 게 아니다. 책을 비롯한 도자기 문방구 향로 청동기 등 세도가 양반 집에서나 볼 수 있는 고급스런 책장을 그린 것이다.

이 작품은 조선 책가도의 대가 이택균(1808-·)이 그린 것으로, 병풍 형식의 '책가도 10폭'이다. 우아함과 세련됨은 물론이고 관람자에게 이택균의 이름이 새겨진 사각 인증을 찾게 하는 깨알 재미도 건넨다. 이외 8폭부터 12폭까지 병풍 형식의 그림엔 가지런히 쌓인 책은 물론이고 조선에서 볼 수 없었던 산호 가지와 공작 깃털을 꽂은 화병 시계까지 조선 중기부터 말기 서구 문물의 유입으로 조선인들이 동경했던 온갖 '럭셔리 궂즈'가 정교한 필력으로 묘사되어 있다. 어찌 보면 현실적인 가치관이 고고한 선비의 의식 속을 파고든 욕망의 한 단면으로 생각되는 그림이다.

이런 욕망은 현실보다는 정신세계를 중시하던 조선의 유교 사회에 하나의 강력한 물꼬를 틀 수 있게 한 대중의 획기적인 그림 역사라고 보여진다. 이는 숨어있던 대중의 욕구가 그림을 통해 싹튼 것이 아닐까. 그 반증으로 책가도처럼 은유적 간접 화법이 있는가 하면 동,식물이나 자연을 상징물로 내세운 일반 민화는 좀 더 직접화법인 적극적이고 솔직하며 대중적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양반과 상놈이라는 신분제도를 타파하려는 일부 지식인과 다수의 생각이 화가의 붓에 의해 적극적으로 드러난 것 같다.

이는 나도 똑같은 사람인데 왜 양반들만 누릴 수 있는가 라는 불평등으로 인한 불만이 시작 아니었을까. 좋은 집에서 좋은 음식 먹고 재물과 남을 부려보고 싶은 그래서 대대손손 편안하고 풍요로운 삶을 이루고 싶은, 인간이기에 원하는 솔직한 본능적 욕심인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민화는 평범한 사람들의 기원이 여러 형식의 제작 과정을 통해 오늘날 하나의 비범한 예술로 발전하게 된 계기였을 것이고, 민화가 여태 살아남아 예술로 발전한 이유라고 생각된다.

혹자는 욕망을 무조건 좋지 않은 걸로 말하지만, 인간에게 욕망이 없다면 도대체 사는 에너지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도나 매화꽃과 고양이가 의미하는 장수를 비는 화접도 또는 꽃과 새의 화조도, 어미와 새끼 호랑이가 나오는 호작도, 입신양명의 상징인 잉어나 물고기, 또 연밥을 통한 많은 자손 바람 등을 봐도 그렇다. 그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 바라는 염원을 그려서 삶의 공간에 세우고 그것에서 희망을 갖고 에너지를 얻기도 한다. 그런데 조선 민화에서 인상 깊었던 게 유교 사상을 민화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점이다. 그러니까 유교 사상의 기본 위에 인간의 욕망을 그림에 심겨 놓은 듯한, 그럼에도 최소한의 인간적 염치를 지키려는 조선인의 마음이 그림에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빈다는 게 무언가. 누군가는 다 내려놓아야 원이 이뤄진다고도 말한다. 어떤 이는 절절한 마음으로 바라야 진짜 원이라고도 한다. 색으로 말하면 한 가지 색이 아니리라. 사람마다 기원하는 마음이 그러리라. 그림도 그렇다 한 가지 색만 사용한다면 그 아름다움은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민화에 나타난 색은 마냥 화려하지도 그저 평범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아름다움 그 자체라고 느껴졌다.

조선 민화는 그런 점에서 오감은 물론이고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마음의 공감을 대중적으로 이끌었다고 생각된다. 게다가 인간의 기본적 염치와 예의를 바탕으로 한 솔직한 욕망을 때론 귀엽게 때론 해학적으로 때론 신비롭게 드러낸 게 조선 민화라고 느꼈다. 말 그대로 인간의 인간이 인간에 의해 그려진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의 욕망을 허심탄회하게 묘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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