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적 실천으로서의 청렴

2025.06.03 15:37:33

홍성덕

청주시 도매시장관리과 주무관

프랑스 철학자인 모리스 메를로퐁티는 '몸의 철학자'라고 불린다.

나는 '말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해야 한다'라는 전기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에 매료되어 그의 철학을 탐구하던 중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다'라는 명제에 '내 의식과 지각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가 아닐까?'하는 의문이 들었고, 그러던 중 메를로퐁티를 알게 되었다.

에드문트 후설이 창시한 철학인 현상학을 계승한 메를로퐁티는 비록 소크라테스, 니체, 비트겐슈타인 등의 철학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중적 인지도는 낮지만, 개인적으로 그의 철학은 과학적 객관주의나 추상적 관념론을 넘어선 근본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느껴져 더욱 관심을 두게 되었다.

현상학이란 사물을 과학적, 객관적으로서 보기보다는 그것이 의식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탐구하는 철학으로 주관적 경험의 구조와 본질을 분석한다. 다시 말해, 현상학은 의식이 세계와 상호작용을 하며 의미를 구성하는 과정을 탐구하는 철학이다.

착시 현상을 예로 들어 볼 때, 두 개의 대상이 물리적으로 같은 길이거나 같은 크기, 같은 색상임에도 우리는 주변 맥락이나 경험 등에 따라 이것들을 다르게 인지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보고 있지 않으며, 의식이 개입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메를로퐁티는 이러한 의식과 지각은 몸 안에 있으며, 우리는 정신뿐만 아니라 온몸을 매개체로 세계를 이해하고 경험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철학에서 신체는 단순히 물리적인 대상이 아니라, 세계와 의미를 구성하는 살아있는 주체이며 객체이다. '살'이라는 요소를 통해 신체와 세계는 얽혀 있으며, 신체는 지각과 행동을 통해 주체와 객체의 구분 없이 능동적으로 세계와 상호작용을 하며 의미를 창출해 나가는 장을 형성한다.

이런 메를로퐁티의 관점에서 청렴을 살펴보면 청렴은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도덕관념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이 직면한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신체적 실천을 통해 세계와 상호작용하며, 의미를 창출하는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공직자에게 있어서 청렴은 단순히 규범을 준수하는 차원이 아닌, 신체가 타인, 제도, 공동체와 지향적으로 얽히며 매 순간 실천해야 하는 삶의 태도이다.

그렇기에 '청렴의 체화'라는 건 더욱 중요하게 느껴진다. 예를 들어, 공직자가 부정 청탁을 거부하거나 공정한 결정을 내릴 때, 이는 단지 이성적 판단의 결과가 아니라 신체가 세계 속에서 사회적 신뢰와 책임의 가치를 반복적으로 경험하고 익히며 발현되는 내재화된 반응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체화된 청렴은 공직자에 대한 신뢰와 존중, 공존의 가치를 실현하는 토대가 되며, 개개인의 내면적 덕목을 넘어 사회와의 다양한 상호작용 속에서 더 공정하고 신뢰할 수 있는 공동체를 구축하는 기반이 된다.

따라서, 청렴은 추상적인 이념이 아닌 신체적 실천으로서 경험하며 그 의미를 만드는 행위로 자리 잡아야 할 것이다.


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

<저작권자 충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충북일보 / 등록번호 : 충북 아00291 / 등록일 : 2023년 3월 20일 발행인 : (주)충북일보 연경환 / 편집인 : 함우석 / 발행일 : 2003년2월 21일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무심서로 715 전화 : 043-277-2114 팩스 : 043-277-0307
ⓒ충북일보(www.inews365.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by inews365.com, Inc.